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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6:1-11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대로 행하라

영상설교

음성설교

언약궤에 관한 이야기

할렐루야 오늘 이 새벽에 알파교회 새벽기도회에 참여하시고 또한 온라인으로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평강이 가득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중심 주제는 언약궤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언약궤와 관련된 내용을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1절을 보시면,
[삼하6: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다시 모은다는 말은 이전에도 모았었다는 의미인 것이죠? 이전에 모았던 이유는 어제 본문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블레셋과의 전쟁을 위하여 병력을 모았었던 것이고, 이번에 모은 이유는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기 위함이었습니다. 2절 말씀을 보시면 바알레유다라고 나오죠. 이곳의 원래 명칭은 기럇여아림입니다.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언약궤가 20년 동안 보관되어 있었죠. 이곳에 20년 동안 보관되게 된 스토리를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이 언약궤는 시내산에서 만들어진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하는 모든 과정과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모든 과정 가운데 늘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했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2절 후반부를 보시면
[삼하6:2b]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을 상징하고 있었죠. 그렇기 때문에 언약궤를 앞세우고 전쟁에 나아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그 전쟁에서 승리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엘리 제사장 시대 때에 언약궤가 실로의 성막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전쟁 중에 블레셋에게 빼앗기게 되었죠. 언약궤를 앞세우고 나간 전쟁에서 처음으로 패배하게 된 것입니다. 언약궤를 전리품으로 노획한 블레셋 사람들은 다곤 신전에 언약궤를 보관했었는데, 재앙이 그치지 않자 이를 이스라엘 신의 저주로 알고 이스라엘에 돌려주게 되었죠. 그리하여, 언약궤는 이스라엘로 귀환하여 오늘 본문 2절 말씀에 나오는 바알레유다, 그러니까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20년 동안 보관되게 되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제 다윗이 아비나답의 집에 보관되어 있었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왜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자 하였을까요?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자 한 이유

그 이유가 대상13:3 말씀에 나오는데,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대상13:3]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무슨 의미입니까? 사울 왕 때에는 언약궤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사울 왕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어제 우리가 함께 말씀을 나누었던 것처럼, 다윗은 모든 일을 행할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였습니다. 언약궤가 없었어도,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행할 때, 전쟁 가운데 승리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다윗은 언약궤가 없어도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그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그 궤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자 계획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이처럼 중요합니다. 그리고 저는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구하기 위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자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 마음을 정말 기쁘게 여기셨을 것 같습니다. 다윗의 중심에 뭐가 있는거예요? 하나님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죠. 다윗의 머리에는 온통 하나님의 뜻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들의 모든 중심에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온전히 자리잡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언약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 일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서, 3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삼하6:3]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방금 읽은 3절 말씀을 보시면, 이들이 언약궤를 옮기는데,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옵니다. 아비나답은 레위인으로 아마도 제사장으로 여겨지지만, 그 외에 구체적인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그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는데, 이들이 실제적으로 제사장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죠. 그런데, 이 때 두 가지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요. 첫 번째로, 언약궤를 옮기는 방식에서 문제가 있었고, 두 번째로, 그 언약궤는 절대로 만져서는 안되는데, 만지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민4:15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민4:15] 진영을 떠날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는 일을 마치거든 고핫 자손들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
방금 읽은 말씀에서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는 일”이라는 표현에서 성소는 성물을 가리킵니다. 아마도 여러분들이 가진 성경에 각주가 달려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방금 읽은 말씀에 의하면 성물은 고핫 자손들이 와서 멜 것이니라 명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따라서 언약궤는 반드시 고핫 자손이나 제사장들이 언약궤 고리에 끼워져 있는 채를 사용하여 어깨에 메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출25:14) 그런데, 이들은 언약궤를 어떻게 이동하였습니까? 소가 끄는 새 수레를 이용해서 이동하고 있죠. 이것은 사무엘상 6장 말씀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벧세메스로 보낼 때 택했던 방식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의 풍습이었던 것이죠.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앞서 읽은 민4:15 말씀에 의하면, 성물은 만지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 말씀하고 있죠. 따라서 언약궤를 만지게 되면 죽을 수 있다가 아니라, 반드시 죽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떠한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 6-7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삼하6:6-7]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오늘 본문 말씀의 출발 장소인 바알레유다, 즉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는 길은 주로 산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평탄하지 못한 곳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길이 험했기 때문에 소들이 갑자기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겠죠. 따라서 수레 옆에서 수행하던 웃사는 언약궤가 크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언약궤를 붙잡았을 것입니다. 만약 웃사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누군가는 언약궤를 붙잡아 땅에 떨어지는 것을 면하게 해야 했었겠죠. 하지만, 웃사의 행동은 앞서 언급해드렸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행동이었고, 말씀에서 언급하고 있었던 것처럼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행할 때 생기는 일

오늘 제가 설교 초반에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렸던 것 기억하실 것입니다. 다윗이 왜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고 하였습니까? 언약궤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자 함이었었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행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언약궤를 옮기는 과정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윗은 이번 계획할 때, 그러니까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을 계획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기 보다, 사람들과 의논하여 이 일을 계획하였습니다. 대상13:1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대상13:1] 다윗이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지휘관과 더불어 의논하고
다윗이 누구와 의논하였습니까? 천부장, 백부장, 곧 모든 지휘관들과 더불어 의논한 것이죠. 무엇을 의논했냐하면, 대상13:3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대상13:3]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겨오자고 앞서 언급했던 자들과 의논했던 것이죠. 그리고 대상13:4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면,
[대상13:4] 뭇 백성의 눈이 이 일을 좋게 여기므로 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 한지라
누구의 눈에 이들이 의논한 일이 좋게 보였습니까? 백성의 눈에 이 일들이 좋게 보였죠. 하나님의 눈에 좋게 보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에 좋게 보인 것입니다. 그 결과 언약궤를 어떻게 옮기게 되었습니까? 대상13:7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대상13:7]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언약궤를 소들이 끄는 새 수레에 싣고 옮기게 되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이 아니라 인간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언약궤를 옮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광경을 다윗과 백성들이 어떻게 보고 있냐하면, 대상13:8 말씀입니다.
[대상13:8]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연주하니라
지금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들은 언약궤가 드디어 예루살렘에 오게 되는 것이 너무 기뻐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연주하며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죠. 아주 신이 났습니다. 단 한분만 빼구요. 누구만 빼구요? 하나님만 빼구요.
왜 그렇습니까?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을 제외하고 진행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목적은 너무 좋았어요. 언약궤 앞에서 하나님께 묻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고자 했었죠. 그런데, 정작 이 중요한 일을 진행하면서, 하나님께 묻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인간들끼리 모여, 인간들끼리 의논하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대로 이 일을 진행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 대로 일을 진행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얼마나 이러한 과오를 많이 범하나요?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 진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사람 보기에 좋은 대로 얼마나 많은 사역들을 진행하였습니까? 다윗도, 진짜 좋은 목적을 가지고 진행한 일이었지만, 그 결과는 웃사의 죽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킨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의 생각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일들을 진행하기 전에, 회의에 참석하는 모든 자들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결정들을 내리고 그 결정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 말씀에 이어 오늘 또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를 드리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순종하는 자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을 가장 행복한 신앙생활의 길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셔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