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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6:25-34 주 안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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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잘 먹는다는 것의 의미

할렐루야 오늘 이 시간 알파교회 주일예배 가운데 참여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평강이 가득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울러 온라인으로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들 모두에게도 우리 주님의 평강이 가득하시길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알파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설교 제목은 주 안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법입니다. 주 안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은 주 안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대해서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잘 먹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몇 년 전부터, 우리 나라에 먹방이 굉장히 유행을 하고 있죠. TV 프로그램 뿐만이 아니라, 유튜브를 보면, 너무 많은 먹방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보셨겠지만, 먹방을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이야 정~말 잘 먹는다” 이와 같은 감탄이 터져 나오죠. 그런데, 저는 이 방송을 보면서, 제 마음 한 편에서는 이런 마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이 먹으면 안될텐데, 몸에 탈나지 않을까”하는 염려하는 마음도 동시에 생겨나게 된 것이죠. 몸도 왜소한 여성이 20인분도 넘는 음식을 한 꺼번에 다 먹어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먹는다는 것은 맛있게 많이 먹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겠지만, 질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건강에 좋은 음식을 적당히 먹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잘 먹는다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건강을 위해 무엇을 먹는냐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 안에서 잘 먹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잘 먹는다는 것은 무엇을 먹는가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잘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우리들이 주 안에서 무엇을 먹는가와 동일한 의미인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 마6:25 말씀 전반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6:25a]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말씀하고 계신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들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잘 먹기 위해 무엇을 먹어야 하는 지를 아는 것은 너무 중요한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마실지, 무엇을 입을지 그것을 알기 위해 염려하지 말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우리에게 그와 같은 것을 알기 위해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실까요? 이유가 있는데요. 그 이유는 우리가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마실지, 무엇을 입을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의미이냐하면,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것을 먹고, 마시고, 입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급해주시기 위해,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어야 할 것들이 다 정해져있고,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와 같이 공급해주시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주 안에서 잘 먹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것을 먹는 것이 잘 먹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일을 하시는가 하면, 오늘 말씀을 들으시는 저와 여러분, 우리들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그와 같은 일을 하시는 분이세요. 여러분들도 잘 아시죠?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것이 있었나요? 마실 물이 있었습니까? 입을 것이 있었어요? 아니요. 아무 것도 없었죠.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단 한 명도 굶어죽거나, 목이 말라 죽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옷이 낡아 지지 않았고, 신발도 해어지지 않았다고 신29:5 말씀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이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공급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죠. 우리들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들도 주 안에서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것을 먹을 때에 잘 먹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믿으십니까? 우리에게는 이 믿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이 믿음이 있어야만 염려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처럼 우리에게,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늘 공급해주시는데, 우리가 믿음이 없이 염려함으로 먹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아무리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믿음으로 먹지 않고, 염려함으로 먹으면 독이 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먹더라도, 염려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스트레스를 통해 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주 안에서 잘 먹기 위해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것을 먹되, 염려함 없이 믿음으로 먹을 때 주 안에서 진짜 제대로 잘 먹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니 염려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마6:25-34까지의 말씀에서 염려라는 표현은 총6번 나옵니다. 마태복음 전체에서 염려라는 표현이 총10번 나오니까 그 만큼 오늘 본문 말씀에서 염려하는 표현이 굉장히 중요한 핵심 단어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이죠. 그 만큼 우리가 주 안에서 잘 먹는 삶을 살기 위해 염려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염려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그 이유에 대해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하고 계신데요.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1

첫 번째로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오늘 본문 26절에 나오는데,26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마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방금 읽은 말씀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데, 잘 살아간다는 것이죠. 왜 그렇습니까? 하늘 아버지께서 이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주시고, 기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하물며, 이처럼 공중의 새들도 먹이시고, 기르시는데,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말씀하고 계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공중의 새들보다, 이 세상 그 어떤 피조물보다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저와 여러분, 우리들을 이처럼 가치있는 존재로 여기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처럼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존귀히 여기세요. 그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여러분들을 늘 먹이시고, 입히시고,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의 필요를 늘 채우시기 원하세요. 아니 그동안 늘 채워오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동안 늘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셨던 그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2

두 번째로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27절에 나오는데요. 2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방금 읽은 말씀에서 주님께서는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말씀하고 계신데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냐하면, 염려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무언가 이루어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말인즉슨 염려라고 하는 것이 쓸데 없는 짓이라는 것이죠. 만약 염려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좋은 것이 생기게 된다면, 염려하셔도 됩니다. 아니 반드시 염려해야죠. 그러나 염려가 우리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 쓸데 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 시간에 우리에게 오히려 좋은 것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3

그리고, 세 번째로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30절에 나오는데요. 30절 말씀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마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방금 읽은 말씀에서 주님께서는 염려하는 자들을 향하여 믿음이 작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이들에게 믿음이 작은 자라고 말씀하고 계신 이유가 있죠. 왜 그렇습니까?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이 세상 그 어떤 피조물보다 존귀히 여기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돌보아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하였다면, 염려하지 말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텐데, 믿지 못하고 염려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염려라고 하는 것은 나 혼자 하고 말고 하는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문제라는 것이죠. 따라서, 염려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염려하는 것을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죠. 그러므로, 염려는 불신앙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1-32절까지의 말씀을 보시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6:31-32]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방금 읽은 말씀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왜 그렇습니까?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32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방인들이 어떤 자들이냐하면, 이방인이란 여러분들이 짐작하시듯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을 의미하죠. 그러니까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니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돌보심을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필요를 자신들이 채워야하기 때문에, 항상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수 밖에 없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염려는 이방인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거죠. 그런데, 이방인들이나 해야하는 염려를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돌보심을 경험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고 있으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쁘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잘 산다는 것의 의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진짜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염려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 때문인데요. 염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메림나오”라는 단어인데, “~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생각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요. 삶을 살면서 항상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하는 것처럼, “염려”라고 하는 것이 필요 이상으로 우리의 생각을 빼앗아 가다보니까, “염려”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본질적으로 해야할 것들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본질적으로 해야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33절 나오죠.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염려라고 하는 것이 필요 이상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들을 빼앗아가다보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마음의 여유가 우리 안에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설교 제목을 제가 주 안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법이라고 정했는데, 어떠한 사람이 잘 살 수 있냐하면, 잘 먹는 사람이 잘 살 수 있습니다. 앞서 설교 초반에 제가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것을 먹는 것잘 먹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죠. 따라서,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것들을 먹고, 마시고, 입으며, 그와 같은 것들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자들은 염려가 있을 수 없죠. 그러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입다보니까 이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냐하면, “이제는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하며, 삶의 본질을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주님 안에서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삶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염려가 가득한 사람은 그와 같은 삶을 절대로 살아갈 수가 없죠. 먹고 사는 문제가 머리 속에 가득한 사람이 어떻게 그 외에 다른 그 무언가에 대해 가치를 두고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마음에 여유가 없죠. 하나님을 향하여, 염려를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내가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신다는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우리 주님은 오늘 말씀을 들으시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모든 염려를 주님께 다 내려놓고,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알아서 다 채워주실 것을 믿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이 땅에서 잘 살기 원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가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진짜 잘 사는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잘 살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더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입으며 살게 되요. 왜 그렇습니까? 33절 후반부에 그리하면, 이 땅에 잘 사는 삶을 살아가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가면, 이 모든 것을,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는 그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 주님께서 약속하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참된 제자로의 부르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대로 반드시 살아가야 합니다. 이유가 있는데요.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말씀은 산상수훈의 일부이죠. 산상수훈이 시작하는 마5:1 말씀을 보시면,
[마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말씀하고 있는데요. 마4장 후반에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 소문이 퍼져 수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랐던 수 많은 무리들을 앉혀 놓고,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말씀과 같이 산상수훈의 말씀을 그들에게 들려주신 것이죠. 그런데, 이처럼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을 수 많은 무리들이 들었고, 또한 이 무리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기는 하였지만, 그 수 많은 무리들은 다 흩어졌고, 결국에는 제자들만 남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순종하며 나아가는 자는 결국 소수라는 것이죠.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도, 오늘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듣고, 삶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염려하는 삶을 살게 되면,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을 듣고 난 후 흩어져버렸던 수 많은 무리와 같은 자들이 됩니다. 하지만, 모든 염려를 다 내려놓고,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게 되면, 우리 주님의 신실한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이죠. 주 안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채우심을 경험하며, 그 힘과 그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쓰임 받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지금 여러분들을 초청하고 계십니다. 주님 지금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으라 믿음으로 나아오면, 내가 채우겠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모든 염려 다 내려놓고 나를 따르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은 주님의 초청에 응답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원하세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것을 먹고, 마시고, 입기 원하시고,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잘 살아가기 원하세요.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살아가기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을 방해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염려입니다. 딤후1:7 말씀을 보시면,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두려워하는 마음이나, 근심하는 마음이나, 염려하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음이 아니예요. 사탄이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염려하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