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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 이 새벽에 알파교회 새벽기도회에 참여하시고 또한 온라인으로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평강이 가득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총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첫 번째 말씀은 삼하13:23-39까지의 말씀으로 압살롬이 암논에게 복수하는 내용이 나와 있구요. 두 번째 말씀은 삼하14:1-20까지의 말씀으로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요압이 중재하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이 두 부분의 말씀에 대해서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압살롬의 복수
먼저 첫 번째는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삼하13:23-39까지의 말씀으로 압살롬이 암논에게 복수하는 내용이 나와 있는데요. 삼하13:22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삼하13:22] 압살롬은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그를 미워하여 암논에 대하여 잘잘못을 압살롬이 말하지 아니하니라
방금 읽어드린 말씀의 내용처럼, 압살롬은 다말의 문제로 암논을 미워하게 되는데요. 암논에 대해서는 잘잘못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 속에는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습니다. 그는 암논을 죽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던 것이죠. 23절 말씀을 보시면, “만 이 년 후에”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암논을 향한 압살롬의 복수심은 사라지기는 커녕 오히려 커져만 가고 있었고, 압살롬은 완벽한 복수를 위해 때와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압살롬이 암논에게 복수할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23절 말씀에 의하면, 압살롬은 에브라임 곁 바알하솔에서 양털을 깎는 잔치를 벌였는데, 압살롬이 이 장소를 선택한 것은 아마도 암논을 살해한 뒤 그술 왕에게 도망치기 쉬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에는 양털을 깎을 때 잔치를 벌여 기쁨을 나누는 풍속이 있었는데요. 압살롬은 다윗 왕이 초대에 응하지 않을 것을 미리 짐작하고, 왕 대신에 암논을 자연스럽게 초대하려고 한 것이죠. 그리고 28-29절 말씀을 보시면, 압살롬은 자기 종들에게 명령하여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졌을 때 그를 쳐서 죽이게 합니다. 모두가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할 잔치의 날, 압살롬은 마침내 암논을 살해하고만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 있었습니다. 21절 말씀을 보시면,
[삼하13:21]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다윗은 암논의 악행을 듣고 심히 노하기만 했을 뿐, 어떤 책망이나 징계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과거 아브넬이 죽었을 때에도, 이스보셋이 죽었을 때에도 율법에 근거하여 공의롭게 판단했던 다윗이, 자신의 가족에게는 하나님의 율법을 적용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이 명백하고 분명한 범죄에 대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압살롬의 복수심은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도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에는 동생이 형을 죽이는 비극이 가정 안에 생기게 된 것입니다. 압살롬이 암논을 죽였다는 소식을 뒤늦게 안 다윗은 대성통곡하죠. 다윗은 아마도 2년 전에 있었던 다말의 사건이 이토록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킬 줄은 예상치 못했을 것입니다. 세월이 약이라고 생각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항상 모든 일에 대해서 공의롭게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공의의 다른 사람들에게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는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아마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암논이 왕위 계승 서열 1위였기 때문에, 설령 그가 잘못을 했다하더라도 그냥 용서하고 그의 잘못을 덮고 넘어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심각한 범죄에 대해 다윗은 아무런 조치도 없이 그냥 넘어갔죠. 따라서 공의롭지 못한 다윗의 결정으로 인해 압살롬의 마음 속에는 복수심만 커져 갔고, 그 결과 한 가족 안에서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시간이 흐른다고, 오랜 세월이 흐른다고 복수심과 같은 마음의 상처는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상처가 더욱 곪고, 더욱 깊어지도록 우리의 마음을 부축이는 악한 사탄 마귀가 활동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깊은 마음의 상처가 있다면, 그냥 시간이 해결시켜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가지지 말고, 나의 마음의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유하시는 하나님께 그 문제를 아뢰며, 어루만지심 가운데 온전한 회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수심과 같은 쓴 뿌리가 우리 안에 올라 올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탄을 대적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의 능력으로 영적 전쟁 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압의 중재
두 번째 말씀은 삼하14:1-20까지의 말씀으로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요압이 중재하는 내용이 나와 있는데요.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도망간 뒤 다윗은 그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요압은 압살롬에게로 향하는 다윗 왕의 마음을 알고 왕과 아들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중재 역할을 하게 되죠.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오기 원하는 요압은 드고아에서 지혜로운 한 여인을 찾았는데요. 요압은 그 드고아 여인을 동원하여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다윗을 설득하려고 계략을 세웁니다. 그 여인은 다윗 앞에 나아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자기의 두 아들이 서로 싸워서 하나가 죽었는데, 사람들이 나머지 한 아들을 처형시키려고 한다고 하소연을 하게 되는데요. 그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그 아들을 살려주도록 조치하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다윗에게 왜 왕은 내쫓긴 아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그 때 다윗은 깨닫습니다. 드고아 여인의 이야기는 여인이 자신의 실제 상황을 말한 것이 아니라, 다윗 자신의 행동을 촉구하는 비유를 이야기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점 한 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님이 개입하시지 않은 채 진행되는 인간적인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요압이 드고아 여인을 이용해 아버지 다윗과 아들 압살롬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은 인간적으로는 너무 훌륭한 역할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압의 지혜는 세상적인 지혜였지, 하나님의 지혜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인간적인 정에 이끌려, 동정심에 호소한 화해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압살롬은 분명 살인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이전에 반드시 거쳐야 했던 과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회개였죠. 다윗도 우리야를 죽인 살인자였으나, 시편51편 말씀처럼, 그가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받아주실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압살롬에게는 회개가 없었습니다. 만약 압살롬에게 진정한 회개가 있었다면, 절대로 아버지 다윗에게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겠죠. 그런데, 제대로 회개하지 않은 자를 받아주었기 때문에, 그로 인해 엄청난 비극이 또 발생하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받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거역하고 범죄한 인간을 그냥 용서해주시는 분이 아니세요.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받으려면, 반드시 진정한 회개가 먼저 선행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압 입장에서는 나름 선한 의도로, 그러니까 인간적인 입장에서 선한 의도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의도였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닌 상황 속에서 진행되었던 이 일로 인해 다윗은 더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적인 정도 분명히 중요하지만, 인간적인 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압살롬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한 후 예루살렘으로 복귀하였다면, 반란을 일으키는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어떠한 일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정에 이끌리는 행동을 하지 마십시오. 정에 이끌리는 행동이 좋을 때도 있죠. 하지만, 그러한 행동을 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시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오늘 세 가지 정도 말씀을 드렸는데요. 첫 번째로, 공의롭게 행하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라고, 먼저 그 공의를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가족들에게 적용하셔서, 하나님 보시기에 늘 정의롭고 공의로운 삶으로 영광돌리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마음에 상처가 있을 때, 상처의 근본적인 치유를 주시는 분은 오직 주님 한 분밖에 없음을 믿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온전한 치유를 경험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정에 이끌려 행동하시기 보다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대로 행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가운데 승리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