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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것을 찾으라(골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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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할렐루야 오늘 이 시간 알파교회 주일예배 가운데 참여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평강이 충만히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울러 온라인으로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들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가득하시길 소망합니다. 지금 우리는 추석 명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족 친지들과 좋은 시간 보내시고 계시죠. 그리스도인으로써 축복의 통로로 귀하게 쓰임 받으시길 축복합니다. 말씀을 전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우리 알파교회가, 지난 주 개척감사예배를 드리고, 오늘 처음으로 주일예배를 드립니다. 성삼위 하나님 이 시간 이 곳에 충만히 임재하셔서, 하나님만 홀로 영광 받으시고, 이 곳에 모인 백성들에게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을 부어주옵소서. 특별히 성령의 기름부음을 부어주시사, 오늘 하나님께서 종의 입술을 통하여 말씀하실 때,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깨닫는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와 같이 은혜 더하여 주실 주님을 의지하오며,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방금 기도할 때 언급해드렸던 것과 같이 오늘은 알파교회에서 드려지는 첫 주일예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말씀으로 말씀을 전해야 할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 말씀으로 말씀을 전하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설교 제목이 “위의 것을 찾으라”인데,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 이유가, 알파교회의 앞으로의 사역 방향이 “위의 것을 추구”하는, 즉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방향이 되어야 하기에, 이와 같은 말씀을 주신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성도님들께 부탁드립니다. 우리 알파교회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위의 것을 찾으라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말씀에 들어가서, 오늘 본문 말씀은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1절 말씀입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골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방금 읽은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보통 신앙생활을 하면서 잊고 살아갈 때가 많은 것 같은데,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는 죄악 가운데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 땅에서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 주님께 받은 은혜를 잊고 살아가고, 뿐만 아니라 죄악 가운데에서 구원해주심에 대한 감사한 마음 조차도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사탄의 전략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죄악 가운데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구원하시고,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잊지 말고, 뿐만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을 늘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또한 예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다면, 그러한 마음을 가진 자가 당연히 추구해야 할 것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위의 것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위의 것을 찾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위에 있는 곳, 즉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고, 허무함 만을 가져다 주는 이 땅의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죽어서 가는 저 천국, 하늘 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죠. 하나님의 통치가 임재한 곳이라면, 그 어디든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현재 우리가 있는 이 곳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한 가정과 직장과 공동체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구하고 찾는 것이 위의 것을 찾는 삶인 것입니다. 즉 마6:33 말씀과 같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이 위의 것을 찾는 삶인 것입니다.

땅의 것을 찾는다는 의미

그렇다면 반대로 땅의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5절 말씀입니다.
[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땅의 것은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라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아니고,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라는 이와 같은 단어들이 나열될 때, 나는 이것들과는 상관이 없으니 나는 땅의 것을 추구하는 자들이 아니라,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 이 5가지 중, 다른 4가지는 제외하고 탐심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오늘 말씀을 나누려고 하는데, 과연 탐심이 무엇일까요? 탐심이란 “무엇인가를 가지려는 과도한 욕망” “남의 것을 더 가지려는 지나친 욕망”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탐심이란 사탄의 속성인 것이죠. 자신의 위치를 망각한 채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 했던 욕망이 바로 사탄이 가졌던 탐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 말씀에서 탐심은 우상 숭배라 말씀하고 있고, 그 만큼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죄악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탐심이 비롯되게 되는 원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의 마음 깊숙히 자리 잡고 있는 “자기중심성”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내 인생의 중심이 “나”이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자기중심성이 강한 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여유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로지 머리 속에 “나”로만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별로 탐심이 없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뭔가 욕심을 부르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인 것이죠.
하지만, 내가 가진 그 무언가, 다르게 표현하자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그 무언가를 다른 자에게 나누어 줄 수 없다면, 그것 또한 탐심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창12:2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복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존재 그 자체가 복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일까요? 복의 근원이십니다. 진짜 복을 나누어 주시는 분이신 것이죠.
그렇다면, 아브라함에게 왜 복을 주셨을까요? 창12:3입니다.
[창12:3]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복이 되게 하셨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받은 그 복을 아브라함 혼자만 누리지 말고, 그 복을 세상 사람들에게, 땅의 모든 족속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나누어주라고 주신 복을, 다른 자들과 나누지 않고, 나만 가지고 있다면, 나를 위해서만 사용한다면, 좀 과격하게 표현해서, 나 혼자만, 내 자식들과만 잘 먹고 잘 산다면, 그것이 바로 탐심인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처럼 우리의 존재 자체를 복이 되게 하셨어요. 순 우리말로 복덩어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받은 복을 세상에 나누는 선한 일을 위해 우리를 먼저 부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일들을 통해, 우리가 먼저 받은 복을 세상에 나누는 이 일들을 통해서, 우리가 속한 공동체 속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쓰임 받을 수 있으며, 이것이야 말로 위의 것을 찾는 삶인 것입니다.

위의 것을 찾지 못하는 이유

그렇다면, 왜 우리는 위의 것을 찾는 삶을 잘 살아가지 못하는 것일까요? 2절 말씀입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골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도리어 위의 것을 생각하지 않고, 땅의 것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언급해드렸지만, 마6:33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엇을 하기 전에요? 바로 앞에 있는 말씀 마 6:31입니다. 마6:31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기 전에 땅의 것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먼저 위의 것을 찾으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도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향하여
[골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명령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방금 읽은 골3:2 말씀을 NIV 영어 성경을 보게 되면, “위의 것을 생각하고” 할 때, “생각하고”라는 부분을 어떻게 번역했냐하면, Set your minds, 그러니까 “너의 마음을 두어라” “위에 있는 것에 너의 마음을 놓고 와라” 갈팡질팡 하지 말고, “너의 마음을 위에 있는 것에 고정시켜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더 나아가, 5절 말씀을 보게 되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까지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래야만 영적 전쟁 가운데 승리하여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인 것이죠. 이와 같이 위의 것에 마음을 고정시키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위의 것을 찾을 때 주시는 복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서 제가 언급해 드렸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특별히 위의 것을 추구하며, 탐심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복과 은혜를 나누고 베푸는 자에게 더 큰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41:1-2 말씀입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시41:1-2] 1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2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방금 읽은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가난하고 힘든 자들을 보살피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복을 주시냐하면, 재앙의 날에 그들을 건져주시고, 지켜주시고, 이 세상에서 복을 주신다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을 전하면, 몇몇 분들은 이러한 내용이 기복신앙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예수님 잘 믿으면 복 받는다고, 가르쳐 왔기 때문에 예수님 믿는 것만 강조해 왔기 때문에 한국교회에 문제가 생긴 것이죠.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을 정정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면 복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면 복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오늘 제가 여러분들께 계속해서 강조하며 말씀드렸던 것처럼, 위의 것을 찾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속한 공동체 안에 샬롬이 오게 하고, 우리들이 속한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을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에 거룩함을 나타내야 하죠. 거룩이 무엇입니까? 구별된 삶인 것이죠. 레위기 19장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에 대해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레19:2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레19: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세요. 너희는 거룩하라. 왜요?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거룩한 삶이 무엇인지 모세를 통해 백성들에게 가르쳐주시는데, 그 구체적인 거룩한 삶이 무엇인지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좀 긴데,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레19:9-10] 9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10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19:13-14] 13 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14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방금 전 제가 여러분들께 말씀드린 거룩한 삶이 도대체 어떠한 삶입니까? 가난하고, 약자들을 돌보는 삶이 바로 거룩한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약자들을 돌보는 자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신앙은 기복 신앙이 아닌 것이죠. 그러면,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 하나님께 복을 받아 부자가 된다면, 부자는 하나님께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고, 부자가 아닌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지 않은 사람인가? 반문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도리어 반문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부자와 부자가 아닌, 부의 기준은 도대체 누가 정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정하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부”를 주셨습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그것을 “달란트”라 부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달란트”를 나눠주실 때, 똑같이 나눠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똑같이 나눠주시지 않고, 불평등하셨냐? 의문을 가지고 불평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생각은 사탄이 주는 생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와 “달란트”를 성도들에게 나눠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해서는 안되는 것이죠. 모든 사람들이 다 솔로몬과 같이 부가 많고, 모든 사람들이 다 모세와 같은 달란트를 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다 다윗 같을 순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사탄은 이러한 것이 불공평하다고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원망을 집어 넣죠. 하지만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러한 부분은 하나님의 주권이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받은 바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원칙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나누어 주신 달란트의 양은 같지는 않지만, 그 맡겨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일한 자에게 주시는 상급과 칭찬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을 보시면,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가 열심히 장사하여 더 많은 달란트를 남겼을 때, 그들을 칭찬하시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헬라어 원문을 보게 되면,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를 칭찬하시는 본문이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동일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따라서,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부”와 “달란트” 안에서 우리 주위에 있는 가난한 자들을 성실히 섬기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에게 그 일들을 더 잘 감당하라고, 더 많은 것들을 맡기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25:21 말씀에 의하면, 이와 같은 일들이 네 주인이 즐거워하는 일이며,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일에 동참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위의 것을 찾는 삶을 살 때 주시는 특별한 복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위의 것을 찾는 삶을 살아갈 때, 특별히 탐심을 버리고,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섬기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진짜 특별한 복이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복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돌보시고, 소외된 자들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그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경험하는 축복인 것입니다. 내가 가진 물질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섬기는 것 또한 너무 귀중한 섬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건강한 이 몸으로 직접 섬김의 자리에 동참하게 될 때, 그 사역의 현장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경험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너무 귀한 축복인 것입니다.
얼마 전 8월24일에 저는 NCMN이라는 단체와 함께 사랑나눔버스라는 사역의 이름으로 인천 모도라는 섬에 섬김의 사역을 다녀왔습니다. 60여명이 넘는 봉사자들이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이 사역에 동참하신 봉사자들은 이 사역을 위해 부산에서, 심지어 제주도에서 오신 자들도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 봉사자들은 직장을 다니지 않거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으신 분들이 결코 아니셨습니다. 의사, 한의사, 간호사들도 계셨고, 그 외에 여러 직장에 다시는 분들이셨습니다. 휴일도 아니었습니다. 평일 수요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 모도라는 섬에 복음을 전하고, 그 곳에 계신 어르신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사모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쪼개어 이 사역에 동참하신 것이죠. 하루 종일 땀흘리며 섬겼고, 마지막에는 그곳에 계신 어르신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7명 정도되는 어르신들이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결실이 있었습니다. 복귀하는 버스 안에서 봉사자들 한 분 한 분, 돌아가면서, 간증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간증을 들으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역을 통해 진짜 복 받은 자들은 봉사자들이시구나 왜 그렇습니까? 그 사역의 현장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경험하였기 때문인 것이죠. 저는 오랜만에 이러한 사역에 동참하였는데, 이 사역을 통해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게 되어 저 또한 너무 복되고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파송의 권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의 통치가 여러분들이 속한 공동체에 임할 수 있도록 실제적으로 구하는 삶을 살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숙제를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부터 이제 해야할 일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구체적으로 여러분 주위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섬기는 섬김의 자리를 찾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지금 현재 여러분들의 형편이 다른 누군가를 돌아볼 여유가 없게 여겨지시거나, 두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나님께 나에게 허락하신 것을 나누는 삶을 살아보지 않았다가 갑자기 나누는 삶을 살려고 할 때, 어색하고, 결심하기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단하고 한 번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시41:1-2] 1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2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우리 알파교회는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이 사역에 동참하려고 합니다. 우리 알파교회가 준비하고 있는 사역은 5K사역이라고, 우리 교회 반경 5킬로 안에 있는 힘들고 어려우신 분들을 돕는 사역을 감당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벌써 이 사역에 함께 동참하시겠다고 하시는 성도님 두 분이 지원하신 상태이고, 또 어떤 성도님은 지금 현재 식당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한 달에 한 번 결식 아동 20여명에서 식사 대접하는 사역을 우리 알파교회와 함께 하고 싶다고 말씀하신 성도님도 계십니다. 개척을 시작한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은 교회인데, 벌써부터 이렇게 하나님께서 알파교회와 함께 일하고 계시니, 진짜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은 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여러분들이 속한 곳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을 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경험하시고,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을 얻게 되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축복을 늘 누리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