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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11:20-45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자가 되라

영상설교

음성설교

줄거리

오늘 본문 말씀은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와 관련된 예언인데요. 오늘 본문 21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단11:21] 또 그의 왕위를 이을 자는 한 비천한 사람이라 나라의 영광을 그에게 주지 아니할 것이나 그가 평안한 때를 타서 속임수로 그 나라를 얻을 것이며
방금 읽은 말씀을 보시면 한 비천한 사람이라고 나오죠. 이 자가 바로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입니다. 방금 읽은 단11:21 중반부를 보시면, “나라의 영광을 그에게 주지 아니할 것이나”라고 언급되어 있는데요. 왜냐하면 그는 원래 왕위 계승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형 셀류코스 4세가 암살되자 그의 아들들이 왕 위를 이어갔었어야 했는데, 21절 마지막 부분을 보시면 “그가 평안한 때를 타서 속임수로 그 나라를 얻을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죠.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이유가 있는데요. 정치적 능력이 뛰어났던 안티오쿠스 4세는 불안정 했던 당시 상황이 평안하고 안정적인 상황이 되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어린 조카들과 공동 통치 제안하고, 후에 자신의 세력을 공고히 한 후에 조카들을 조용히 제거해 버리고 왕 위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속임수로 왕 위에 오른 안티오쿠스 4세는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는데요. 그는 오늘 본문 말씀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거짓과 속임수 등 온갖 악한 방법을 총동원하여 권력을 유지하였습니다.
어제 설교 말씀에서도 언급해드렸었지만, 북방 왕 셀류코스 왕조와 남방 왕 프톨레미 왕조는 오랜 시간에 걸쳐 계속해서 세력 다툼을 했었다고 말씀드렸죠.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계속해서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시면 북방 왕이었던 안티오쿠스 4세가 남방 왕을 세 차례 공격했던 기록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25절 말씀을 보시면,
[단11:25] 그가 그의 힘을 떨치며 용기를 다하여 큰 군대를 거느리고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라고 언급되어 있죠.
이것이 1차 공격이구요.
29절 말씀을 보시면,
[단11:29] 작정된 기한에 그가 다시 나와서 남방에 이를 것이 이번이 그 전번만 못하리니 라고 언급하고 있는데요.
이번이 2차 공격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3차 공격은 40절 말씀에 나오는데요.
[단11:40] 마지막 때에 남방 왕이 그와 힘을 겨룰 것이나 북방 왕이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로 회오리 바람처럼 그에게로 마주 와서
라고 말씀하고 있죠. 이처럼 안티오쿠스 4세는 3차례에 걸쳐 남방 왕과 전쟁을 치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안티오쿠스 4세가 전쟁을 치르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온갖 권모술수와 계략으로 전쟁을 치르는데요. 이처럼 악한 왕이 안티오쿠스 4세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안티오쿠스 4세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세상 왕들이 다 비슷하죠. 그들은 어떻게든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승리하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티오쿠스 4세가 다른 세상 왕들과는 달리 악명 높았던 이유 한 가지가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그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동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 설교 때에도 언급해드렸었지만, 31절 말씀을 보시면, 그가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혔죠. 성전에 돼지 피를 뿌리는 등 성전을 부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매일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상번제를 없애버렸습니다. 그리고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번제단에 제우스 신상을 세웠었죠.
그런데 그의 만행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죠. 33절 말씀을 보시면,
[단11:33]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들이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나 그들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몰락하리라
방금 읽은 말씀에 나오는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들은 다니엘과 같이 고난과 핍박 가운데에서도 믿음을 지켰던 자들을 의미하는데요. 당시 안티오쿠스 4세는 유대인들이게 헬레니즘 사상을 강요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제우스 신상도 세웠던 것이죠. 따라서 정통 유대교 신앙에 충실했던 소수의 지혜자들은 방금 읽은 말씀과 같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러므로 그 시대에 믿음을 지키려던 자들은 순교를 당하는 등 고난과 핍박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악행을 저지르면 어떻게 되야하나요? 심판 받아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의 인생은 형통했습니다. 36절 말씀을 보시면 “형통하기를”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안티오쿠스 4세의 교만은 하늘을 찔렀죠. 따라서 36절 말씀을 보시면, “그 왕은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하며 비상한 말로 신들의 신을 대적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죠. 하나님이 없이도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다보니까 그는 자기 마음대로 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높여 모든 신들보다 크다하며 자기 자신을 신들보다도 더욱 높이며 교만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보다도 자신을 더욱 높였던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설교 때에도 언급해드렸었지만, 하나님 없이 형통하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고 말씀드렸던 것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없이 형통했던 자가 바로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세상적으로 잘 나갔었던 안티오쿠스 4세도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데요. 45절 말씀을 보시면,
[단11:45] 그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세울 것이나 그의 종말이 이르리니 도와 줄 자가 없으리라
그에게도 종말이 이르렀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도와 줄 자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죠. 안티오쿠스 4세는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았던 자 였으나, 주변에 도와줄 사람 없이 쓸쓸하게 최후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자가 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는 21절 말씀에서 한 비천한 사람이라고 소개되고 있는데요. 사실 그는 세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비천자가 아니었죠. 그는 거대한 제국의 통치자였고, 전쟁마다 대부분 승리하였으며, 하는 일이 항상 형통하고 엄청난 권력을 누렸던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그는 비천자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비천한 자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에 비천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글 성경의 번역으로는 비천한 자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어의 의미는 조금 달랐습니다. 히브리어로 ‘바자’라는 단어인데요. 이 단어는 업신여기다 경멸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이와 같은 단어의 의미를 담아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를 소개하자면 업신여김을 받는 자, 경멸을 받는 자라고 해석할 수 있겠죠. 누가 보시기에 그렇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안티오쿠스 4세가 그렇다는 것이죠. 왜 그렇습니까? 그가 아무리 엄청난 권력을 누리고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자라 하더라도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 속임수와 거짓말을 일삼는 등 사탄의 하수인 같이 행동하고, 사탄에게 쓰임 받는 자와 같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아무리 잘나간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지 않으신다면 비천한 자인 것이죠.
그런데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고 믿음을 지켰던 자들인데요. 오늘 본문 33절 말씀을 보시면 지혜로운 자들이라 말씀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자들입니다. 32절 중반부를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11:32] 오직 자기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
말씀하고 있는데요. 이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앞서 언급해드렸던 것과 같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였고, 핍박을 받았지만, 그리하여 33절 말씀에 나오는 것과 같이 몰락을 당하는 것 같았지만 그들의 믿음과 신앙 만큼은 몰락하지 않고 강하고 용맹하였던 것이죠.
33절 34절에 몰락이라고 표현된 단어의 원어를 한번 찾아보았는데요.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카샬”이라는 단어였는데, “비틀거리다, 또는 흔들리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는 몰락이라는 의미보다는 원래 의미인 비틀거리다와 흔들리다라는 의미가 더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고난과 핍박을 받다보니까 그로 인해 그들의 인생이 비틀거리거나 흔들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그 당시에는 그들을 핍박하였던 세상 권력이 승리한 것 같이 보이고, 핍박을 받았던 자들이 패배한 것 같아 보였지만, 절대로 그렇지가 않죠. 왜 그렇습니까? 최후 승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성도들에게 있기 때문이죠. 우리 주님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살리셔서 부활하심으로 승리는 나타내어 보이시지 않으셨습니까? 마찬가지죠. 우리들도 그와 같이 승리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 35절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는데요.
[단11:35] 또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몰락하여 무리 중에서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 이는 아직 정한 기한이 남았음이라
방금 읽은 말씀에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순교하지 않은 사람들은 비록 고난과 핍박으로 말미암아 몰락하듯 비틀거리고 흔들릴 수 없지만, 결국에는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되며 희게 되어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해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비천한 자가 아니라 존귀한 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따라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 속에서 비천한 자들이나 하는 거짓과 속임수를 행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자로 세상 속에서 정직한 삶으로 또한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승리하는 삶 사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