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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12-17 초대교회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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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사랑하는 우리 알파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알파교회가 개척한지 엊그저께 같은데, 벌써 3개월이나 지났습니다. 그 무엇보다 지금까지 오는 길에 수 많은 기적과 은혜로 함께 해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먼저 감사드리고, 또한 개척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함께해주신 성도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저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 같으신 분들입니다. 저도 이 은혜 절대로 잊지 않고 여러분들을 위해 항상 기도하고 중보하도록 하겠습니다.
작년 하나님께서 저희 부부에게 개척을 하라는 마음을 주셨을 때,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교회의 이름은 알파교회였습니다. 계22:13절 말씀을 보시면,
[계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말씀하고 있죠. 그러므로 알파의 의미는 처음과 시작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알파교회란 의미는 이 세상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처음과 시작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며, 또한 교회의 처음과 시작인 초대교회의 신앙을 본받고, 회복하는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 2주전까지 총회에서 실시하는 총회 교회개척훈련을 다 수료했고, 이번 주 화요일 수료식에 참석하기 위해 천안에 있는 주복교회에 갑니다. 최근 2주전에 참석했던 총회 교회개척훈련 3과정 배우는 과정 중에 과제를 내주신 것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알파교회에 주신 비전을 한 문장으로 선언문을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알파교회에 주신 비전선언문이 있는데, 지금 이 시간 여러분들과 함께 공식적으로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알파교회에 주신 비전선언문은 “초대교회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앞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미 말씀해드렸지만, 알파의 의미는 처음과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알파교회는 이 세상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처음과 시작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며,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알파교회는 교회의 처음과 시작인 초대교회의 신앙을 본받고, 회복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초대교회 성도들의 가장 중요한 신앙 생활의 두 축은 복음 전파와 구제였습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는 참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였던 것이죠. 따라서 우리 알파교회도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알파교회 성도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알파교회 가운데 주신 비전입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는 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들과 이 비전을 함께 공유하고, 이 비전을 함께 실천해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 비전을 실천하며 나아가는데 있어 문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앞서 제가 말씀드린 이 비전은 사실 이 세상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비전이죠. 사실 어떻게 보면 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비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다 알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실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죠. 이것이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성도들은 알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알고 실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명령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삶”을 실천하며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이와 같은 삶을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저는 오늘 이와 같은 내용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고후2:14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방금 읽은 말씀의 내용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사도 바울과 초대교회 성도들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 그러니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고후2:12 말씀을 보시면,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2: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방금 읽은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죠. 그런데 12절 후반부를 보시면 어떠한 일이 생겼습니까?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그것을 자신의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나아가는 길에서 문을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의미를 앞서 우리가 함께 읽은 14절 말씀의 표현을 빌려 말씀드리자면,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신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항상 삶 속에서 승리하는 경험을 쌓으며 살아가게 해주신다는 의미이고, 승리의 간증이 넘쳐나는 삶을 살아가게 해주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승리의 간증 경험이 계속 쌓여가다보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다하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이들이 이와 같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비결이 있었습니다. 고후2:14 말씀을 보시면, “이기게 하시고”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 우리가 보는 개역개정성경의 이 번역은 헬라어성경 원문을 직역한 것이 아니라 의역을 한 것입니다. “이기게 하시고”라고 번역 된 이 단어는 헬라어로 ‘트리암뷰오’라는 단어인데, ‘환호의 개선 행진을 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번역 성경에서는 14절 말씀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는데,
[고후2:14, 새번역] 그러나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언제나 우리를 참가시키시고
라고 번역하고 있죠. 그러니까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이미 승리하신 예수께서 승리의 개선 행진을 하고 계신데, 우리가 만약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우리를 그 개선 행렬에 동참시켜 주셔서, 예수께서 승리하심을 우리도 함께 누리도록 해주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영적으로 항상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14절 말씀에서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라는 표현을 헬라어 원문에서 “승리의 개선 행진으로” 묘사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14절 후반부 내용을 보시면 알 수 있는데, 14절 후반부 내용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사실 방금 읽은 말씀은 문맥상 약간 이상한 부분이 있는데, 왜냐하면, 승리의 개선 행진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내용으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사도 바울이 이와 같이 언급한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 로마군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승리의 개선 행진을 할 때에 개선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에 향을 피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향의 냄새가 행진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과 그 행진을 구경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돌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이 향의 냄새만 맡아도 승리의 개선 행진을 떠올리게 되며 승리에 관한 기쁘고 좋았던 추억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따라서 사도 바울이 14절 말씀과 같이 말씀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항상 이기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승리의 개선 행렬에 우리를 동참시켜주시는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 가운데 나아가 예수께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신 향기, 그러니까 14절 말씀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자면,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 즉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세상 가운데 더욱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이런 내용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삶 속에서 승리케 하시고,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우리를 동참시켜주시겠죠.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승리의 경험, 그 승리의 향기를 세상 속에 나타내는 삶을 더욱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알파교회는 세상 속에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5K운동 사역을 매주 월요일마다 실시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사역을 감당하면서 너무 기쁘고 행복한 것은, 먼저는 저 스스로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을 많이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힘든지도 모르고 이 사역을 잘 감당해 나아가고 있는데, 이보다 저를 더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이유는 함께 동참하시는 성도님들의 삶 속에서도 이와 같은 은혜의 경험과 간증들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함께 5K 사역을 하기 위해 차량으로 이동할 때에나, 함께 식사하며 교제할 때, 성도님들 안에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심에 대한 간증이 끊이지 않고, 그러다보니 지금 우리 간증 배틀하는 거냐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간증의 나눔이 끊이질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알파 공동체 가운데 주신 승리의 향기가 끊이질 않고 온 성도들 가운데 진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까
그런데 초대교회 공동체가 바로 이와 같은 공동체였습니다. 이들은 만나면 항상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함께 간증하고 함께 나누었던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신 승리의 향기를 함께 공유하였던 공동체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마가 다락방에서 함께 모여 기도하며, 처음 성령 임재를 경험하였을 때, 어땠겠습니까? 아 그냥 성령충만을 받았나보다 혼자 좋아하고 말았을까요? 아니죠. 그 자리에 함께 모인 모든 자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로 말미암아 함께 기뻐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성령의 능력과 은사들에 대해 서로 간증하며 나누는 기쁨의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자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우는 기적을 행하였을 때, ‘아 이 기적 아무도 모르게 나만 비밀로 하고 있어야지’ 했을까요? 그렇지 않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행전은 누가 기록하였습니까? 누가가 기록한 것입니다. 그 말인 즉슨 오순절 마가다락방에서 있었던 성령의 임재 사건과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자를 일으켜 세우는 등 사도행전에 기록된 이 모든 일들을 누군가로부터 간증을 통해 전해들은 이야기라는 것이죠. 이 외에도 초대교회 안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과 엄청난 간증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에게 그들의 삶 가운데에 간증이 넘쳐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이와 같은 승리의 영적 체험과 간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세상 속에서 더 잘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5절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2: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앞서 14절에서 언급해드린 것과 마찬가지로 15절에서도 향기를 언급하고 있는데, 15절 말씀에서 언급하고 있는 향기는 앞서 14절에서 말씀드린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와는 다른 향기를 의미합니다. 일단 헬라어도 다른 단어인데, 앞서 14절에서 말씀드린 향기 즉,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는 승리의 개선 행렬 때에 났었던 향기였다면, 방금 읽은 15절 말씀에서 언급하고 있는 향기는 번제물의 향기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번제물을 번제단에서 태울 때 났었던 향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후2:15 말씀을 새번역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2:15, 새번역] 우리는, 구원을 얻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그러니까 번제물을 하나님께 바치듯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것입니다. 레1:9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죠.
[레1:9]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방금 읽은 말씀에서 보시는 것처럼,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제물을 불살라 화제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이것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상식적으로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짐승을 태울 때 나는 냄새가 과연 향기로왔을까요? 그렇지 않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돼지고기나 소고기 같은 경우 살코기만 구울 때 나는 냄새라면 모를까 짐승의 가죽을 제외한 모든 것을 한꺼번에 태우는 것이었기에 결코 향기로운 냄새일 수 없고, 아마도 심하게는 역겨운 냄새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방금 우리가 함께 살펴본 레1:9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번제물을 태워서 나는 냄새를 향기로운 냄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그 이유는 짐승 전체를 불에 태워 번제로 드리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온 몸을 바쳐 인간의 모든 죄악을 대신 속하시는 것의 예표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제물이 태워지는 향기는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는 대속의 향기요. 인간에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 주는 생명의 향기요. 구원의 향기인 것이죠. 그러므로 죄악된 인간을 사랑하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 밖에 없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 번제물이 태워지는 냄새가 그토록 향기로운 냄새, 좋은 냄새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6절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2: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그러니까 방금 읽은 말씀은 다음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즉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죠. 구원에 이르지 못하니, 죽음의 악취가 진동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 사람에게는, 즉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 즉 생명의 향기, 구원의 향기인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와 같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망과 죽음의 악취가 진동하고 있는 세상 가운데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생명의 향기, 구원의 향기가 날 수 있도록 하는 이 일을 누가 감당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일을 누가 감당해야하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들으시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감당해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사역을 너무 귀중하게 보시고, 우리 모두를 이 사역 가운데 초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들으시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바쳐진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죽음의 냄새와 사망의 악취가 진동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생명의 향기, 구원의 향기를 나타내는 자가 되기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세상 속에서 생명의 향기, 구원의 향기를 드러내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17절 말씀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는데요.
[고후2: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방금 읽은 17절 말씀을 보시면, “우리는 수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혼잡하게 한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카펠류오’라는 단어인데, “품질을 떨어뜨리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품격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우리는 순전함으로, 그러니까 순수하게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하여 세상 속에서 생명의 향기, 구원의 향기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죠.
초기 기독교인들의 모습이 담겨있는 초대 교회의 문서 가운데,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문서가 있습니다. 이 편지는 AD 117에서 180년 사이에 살던 높은 지위의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진 편지로써 사도 요한의 제자인 폴리캅에 의해 쓰여졌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편지에 서술되어있는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편지 내용의 일부를 여러분들에게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디오그네투스께
그리스도인은 나라나, 언어나, 의복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게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도시에 사는 것도 아니고, 이상한 언어를 쓰는 것도 아니며, 특유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각자 주어진 삶에 따라 그리스나 다른 이방 도시들에 흩어져 살고, 도시의 관습에 따라 옷을 입고, 음식을 먹으며, 삶을 영위합니다. 그들은 자기 조국에 살면서도 마치 나그네와 같습니다. 시민으로서 모든 의무를 수행하지만 외국인과 같이 모든 것을 참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결혼하여 아이를 가지지만, 아이를 버리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식탁은 공유하지만, 아내를 공유하지 않습니다. 육신을 입고 있지만, 육신을 따라 살지는 않습니다. 지상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들은 주어진 법에 순종하지만, 그들의 삶은 그 법을 초월합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사람들에 의해 박해를 받습니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부유하게 합니다. 그들은 능욕을 받을 때 능욕하는 자를 축복하고, 멸시을 당할 때 멸시하는 자를 존중합니다. 그들은 착한 일을 하는데도 죄인들처럼 벌을 받고, 벌을 받을 때는 생명을 얻는 것 같이 기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초대 교회 성도들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들은 삶의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냈던 것입니다. 이들이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간 결과 어떻게 된 줄 아십니까? 예수를 믿는 자들이 4세기 초까지 매 10년마다 평균 40%씩 성장했고, 로마의 인구 중 10%에 육박했을 정도이니 말 그대로 폭발적 성장을 이룬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신기한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초대교회 문서들에서 불신자들에게 전도하라는 말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그것은 당시에 너무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인 것이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이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전도는 말이 아니라 구별된 삶으로 되어져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죠. 초대교회 성도들이 앞서 제가 소개해드린 디오그네투스의 편지에 나오는 것과 같은 삶의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냈기에 이와 같은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알파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함께 이와 같은 교회, 이와 같은 성도들이 되도록 함께 노력해보십시다. 초대교회 성도들과 같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도록 한 번 노력해보십시다. 그리하면 오늘 주신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반드시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여러분들을 동참시켜주시고,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승리의 향기가 간증의 향기가 드러나도록 더욱 더 은혜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세상 속에서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