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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1:1-10 하나님과의 영원한 사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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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지난주까지 전도서 말씀이 끝이 났고, 오늘부터는 요한일서 말씀을 묵상하게 됩니다. 요한일서에는 특별히  많이 등장하고 있는 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 단어가 무엇이냐하면, 그 단어는 바로 "사랑"입니다. 성경 66권 중에 각 권별로 사랑이라는 단어가 쓰인 횟수를 조사해보면, 요한일서는 성경 66권 중 네 번째에 해당하는데요. 요한일서가 다섯 장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본다면, 성경 66권 중 가장 많이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 만큼 요한일서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 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요한일서에서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왜 그토록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사랑이 곧 하나님을 가리키는 속성이기 때문이고, 사도 요한은 그 사실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너무 잘 아시는 말씀인데요. 요한일서 4장 16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무엇이라? 사랑이시라. 사랑이 곧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이 표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속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따라서 사랑은 관계적 언어인 것이죠. 사랑을 함께 나눌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 무엇을 할 대상이 필요한 것입니까? 사랑을 나눌 대상이 필요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당신과 사랑을 나눌 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에서는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을 무엇이라 표현하고 있냐하면요. 오늘 6절 말씀 보시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무엇이 있다하고? 사귐이 있다하고. 즉, 요한일서에서는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을 사귐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사귐이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뭔가하면요. 여러분들 많이 들어보셨을텐데, "코이노니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코이노니아라는 단어는, 사랑이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관계적 언어인데요. 이 단어도 역시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귄다는 것을 어떻게 혼자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코이노니아라는 단어는 그 의미 속에 좀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는데요. 그것이 이루어지는 방식이 쌍방 상호교류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코이노니아라고 하는 것은 혼자할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한쪽에서만 하는 일방적인 관계로 이루어져서도 안된다는 것이죠. 따라서,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 즉 하나님과의 사귐, 코아노니아는 절대로 한쪽에만 사랑하는 일방적인 관계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쌍방 상호교류의 방식으로, 즉 서로 사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신실하시고, 항상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면, 누구만 잘하면 되는 것입니까? 저와 여러분, 우리들만 잘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 하느냐? 그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관건인 것입니다.
요한이 요한일서를 보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초대교회에 들어와 거짓 교리를 가르쳤던 영지주의 이단들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영적인 것만 선하고, 육적인 것은 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3가지 문제가 발생했었는데요. 첫 번째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음을 부정하였구요. 두 번째로, 이것으로 인해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는데, 영적인 것만 선하기 때문에, 이들은 항상 영적인 것만 추구하고, 자기 자신의 육체와 삶에 대한 진지함과 성실함 등은 다 포기해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갔습니다. 그로 인해 이들은 죄의식을 상실하게 되어 버린 것이죠. 그 결과 세 번째로,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는데요. 죄의식 없이 아무렇게나 살아가니까, 당연히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문제 때문에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를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 말씀 6절,8절,10절 말씀을 보시면요? 만일 우리가 ~~하면 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사실 이 표현은 사도 요한이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을 인용한 것에 해당합니다. 6절 말씀 보시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다 하고… 누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까? 영지주의자들이 이렇게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8절 말씀 보시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누가 이렇게 말했다는 거예요? 영지주의자들이요. 이들은 자신들이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죄 의식을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세 번째로, 10절 말씀 보시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누가 이렇게 말했다는 거예요? 영지주의자들이요. 이웃과 특별히 형제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을 베풀지 않는 등, 범죄하는 삶을 살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고 생각하며 살아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5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영지주의자들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라구요? 빛이시라구요. 사도 요한이 왜 하나님은 빛이라고 이야기를 했냐하면, 영지주의자들은, 자기 자신들은 죄를 지을 수 없는 신적 빛 알맹이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더 육체적으로 죄의식이 없었던 것이죠. 그런데, 사도 요한은 영지주의자들의 이 주장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빛이시고, 하나님과 진정한 사귐이 있다면, 하나님과 코이노니아가 있다면, 하나님과 쌍방 상호교류가 일어나야 하는데,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에 행해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귐, 즉 진정한 의미에서의 코이노니아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죄를 절대로 지을 수 없는 신적 빛 알맹이를 가진 것이 아니라, 단지 죄인에 불과하며, 9절 말씀과 같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우리들은 절대 영지주의자들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음을 믿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들의 모습들 중 일부분의 모습들이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사귐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영적인 부분들을 갈망하기는 하지만, 실제적인 삶 속에서는 어두움 가운데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계신 것은 7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과의 진정한 사귐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할 때, 그리고 그것이 이웃과의 사귐으로 나타날 때, 증명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와 영원한 사귐의 관계를 갖기 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실 일들은 100% 선하게, 100% 완벽하게 늘 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이 관계의 성패는 누구에게 달려 있냐하면,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에 행해야하며, 그리고, 이웃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때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부분은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실행하기가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부분을 함께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설교 초반 제가 여러분들에게 언급했던 내용 하나님은 누구시라구요? 사랑이시라구요. 그래서, 사랑을 나눌 대상으로 누구를 창조하셨습니까?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과의 영원한 사귐을 위해, 우리들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이 바로 하나님과의 영원한 사귐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이 사실을 꼭 기억하길 원하고 계십니다. 너희들의 존재 목적이 바로 나와의 영원한 사귐에 있다. 매일 매일 이 사실을 기억하여라. 그런데, 우리는 바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사실을 망각하고 살아갈 때가 참 많죠. 하지만, 하나님은 단 한번도 이 사실을 잊으신 것이 없고, 하나님은 단 한번도 이 사실을 우선 순위에서 제거해 버리신 적이 없으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빛 가운데 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고 버겁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영원한 사귐에 우선순위를 두고, 성령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세상 속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하나님과의 온전한 코이노니아를 이루시는 여러분들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