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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2:11-22 한 새 사람

영상 설교

음성 설교

불안하고 분열된 이 세상

할렐루야 오늘 이 새벽기도회는 알파교회에서 드리지는 첫 번째 새벽기도회입니다.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시고 또한 영상으로 참여하시는 여러분들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평강이 가득 넘치시길 소망합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알파교회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건강하게 부흥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불안과 분열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를 생각해보면,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고, 국민들은 경제적으로 불안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죠. 범위를 좀 더 넓혀서 전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지금 현재 6개월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그 땅 국민들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 공포를 느끼고 있으며, 또한 이 전쟁의 여파로 식량 위기와 유가가 급등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불안정해지며, 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안과 분열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죠.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 이 세상은 단 한번도 이와 같은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끊임 없이 발생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불안과 분열이 없는 세상을 희망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팍스 로마나

그런데, 역사적으로 볼 때 거의 200여년이라는 긴 시간의 시대를 “평화의 시대”라고 명명하고 있는 시대가 있는데, 그 시대는 바로 로마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특별히 “팍스 로마나”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의미는 “로마의 평화”란 의미입니다. 로마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통치하던 시기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아우구스투스의 평화”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200여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와 같은 평화의 시대를 이룰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힘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평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어떤 나라와 그 어떤 민족도 그 힘 앞에 도전할 수 없었기에, 200여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죠.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주변 나라들로부터 너무 많은 침략을 당했었죠.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 있는 지정학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진짜 이유는 힘이 없고 약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금 현재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고, 또한 군사적으로 핵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 어떤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을 무시하며 침략할 수 있겠습니까? 자동적으로 평화로워 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개인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불안과 분열은 힘이 없기 때문이라는 반증이기도 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힘을 가져야 한다.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샬롬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시면, 사도 바울은 불안과 분열 가운데 있던 에베소 교인들에게 힘을 가져야 된다. 능력을 가져야 된다 말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이 참된 평안을 주시는 분이시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17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엡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방금 읽은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은 불안과 분열 가운데 있던 자들에게 참된 평안을 전하시는 분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평안은 헬라어로 “에이레네”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만이 참된 평안을 주시는 분이실까요? 그 이유는 바로 14절에 나옵니다.
[엡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방금 읽은 말씀에 나오는 화평이라는 단어는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화평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헬라어로는 앞서 “평안”으로 번역된 “에이레네”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곧 우리의 평안이시고, 우리의 화평이신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존재 자체가 평안이시고, 화평이신 예수님만이 우리 모두에게 참된 평안와 화평을 가져다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과 화평을 가져다 주실 때에, 세상과는 다른 좀 특별한 방식으로 가져다 주십니다. 제가 좀 전에 헬라어로 평안과 화평이 무엇이라 말씀드렸습니까? 에이레네라 말씀드렸죠.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평안과 화평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는 “샬롬”이라는 단어입니다. 여러분들 잘 아시죠? 그런데 이 “샬롬”이라는 단어는 “샬람”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하게 되었는데, “샬람”이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줄 아십니까? “배상하다. 지불하다. 완성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샬롬”은, 즉 평안과 화평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대신 배상하고, 지불하고, 댓가를 치루었기 때문에 얻어지는 것이라는 것이죠. 누가요? 예수님이요. 이사야서 53장 5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사53:5]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답니다. 그가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가 “샬롬”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엡2:13 말씀을 보시면,
[엡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유대인 성도들과 이방인 성도들, 즉 에베소 성도들이 가까워졌는데, 어떻게 가까워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샬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엡2:14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엡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2:14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화평이시고, 둘로 나뉘어 있던 것들을 하나로 화평하게 만드셨는데, 어떻게 화평하게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자기 육체를 희생하심으로 말미암아 화평을 즉 “샬롬”을 가져다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주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평안과 화평을 가져다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고,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샬롬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인가?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왜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평안과 화평을 가져다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에베소 성도들에게 말씀 했을까요? 앞서 제가 설교 초반 부에 여러분들에게 소개해드렸던 “팍스 로마나” 로마의 평화 시대에 대해서 말씀드렸던 것 기억나실 것입니다. 이들은 어떻게 평화의 시대를 누릴 수 있었습니까? 힘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평화의 시대를 누릴 수 있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편지했던 그 시대가 바로 ‘팍스 로마나’ 시대였습니다. ‘팍스 로마나’ 로마의 평화 시대는 로마제국의 지배계급들에게 있어서는 태평성대의 시대였지만,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식민지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로마의 평화 유지를 위한 로마의 폭력과 착취의 도구로 고통 받던 시대였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로마로부터 억압당하고 있던 에베소 성도들에게 이 말씀을 전하였던 것이죠.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조차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이라고,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고,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고,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던 자라고 차별 받고 있던 에베소 성도들에게 진짜 참된 평안과 화평을 가져다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한 새 사람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팍스 로마나와 같이 힘과 폭력에 의한 평화는 자기 자신만이 누리는 가짜 평화라는 것이죠. 진짜 평안과 화평은 예수님처럼 내가 희생하고 내가 나눌 때 누리게 되는 것이며, 나의 희생과 헌신으로 말미암아 나와 더불어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나누며 누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평안과 화평, 즉 샬롬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예수님처럼 내가 속한 곳에서 나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샬롬을 가져오게 하는 자가 되길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한 자를 가리켜 오늘 엡 2:15 말씀에서는 “한 새 사람”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2:15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엡2: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하셨던 그 사역을 지금 이 시대에 감당할 한 새 사람을 지으시고, 그들을 화평의 도구로 사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들도 예수님 안에서 One New Man, 즉 한 새 사람이 되어 화평의 도구로, 샬롬의 도구로 쓰임 받아야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쓰임 받으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시대의 한 새 사람

그런데, 오늘 본문 문맥 상 나타나고 있는 한 새 사람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화평하게 하는, 즉 하나되도록 쓰임 받는 자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천여년이 지난 지금, 아직까지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인즉슥, 지금 이 시대에도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새 사람이 필요하다는 의미인 것이죠. 예수님께서 마20:16에 하신 말씀
[마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말씀하신 것과 같이 먼저 복음을 맡았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나중된 자가 되었고, 나중 된 자였던 이방인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믿으며, 먼저된 자가 되게 된 것이죠.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내용의 역전 현상이 일어나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롬11:25 말씀과 같이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이 우둔하게 된 것이기에 나중된 자가 되어버린 온 이스라엘이 구원 받을 수 있도록, 그들이 예수님 앞에서 함께 샬롬을 누리는 자가 될 수 있도록 쓰임 받는 한 새 사람을 우리 주님은 오늘 이 시간에도 찾고 계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 모두들도, 여러분들 자신을 위한 여러 기도의 제목이 있으시겠지만, 주님이 찾으시는 한 새 사람으로서, 먼저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그리고 내가 속한 곳에서, 화평의 도구로 쓰임 받는 한 새 사람이 될 수 있기 위해 기도하시는 여러분들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