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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34:1-10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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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할렐루야 오늘 이 시간 알파교회 주일예배 가운데 참여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평강이 가득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울러 온라인으로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들 모두에게도 우리 주님의 평강이 가득하시길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알파교회 성도 여러분,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많이 힘들고 어려우시죠? 우리나라 경제가 너무 어렵고, 그러다 보니 삶을 산다는 것이 참 녹록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삶을 살면서 기쁘고 행복한 일들만 가득했으면 좋겠는데요. 하지만 특별한 이벤트도 없이 매일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그러한 일들은 찾아보기 힘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시면서, 이보다 더 기쁠 수는 없다 하실 정도로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 하나 이상씩은 가지고 계실텐데요. 여러분들은 기쁘고 행복할 때, 어떻게 표현하십니까?

문제 제기를 위한 예화

예전에 제가 신대원에 입학하자마자 서울 방학동에 있는 교회에서 처음으로 중고등부 교육전도사로 사역할 때 였습니다. 청년 선생님 중 한 분이, 우리나라 명문대 중 하나인 SKY 대학 중에서 K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요. S대학에 입학을 하고 싶어서 재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 같으면 K대학으로 만족했을 것 같은데, 대단하시죠. 그래서 제가 그 선생님께 이렇게 물어 본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 만약 S대학에 합격하시면, 그 기쁨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으세요?”라고 물어 봤더니, 그 선생님 왈: “침대 위에서 미친 듯이 뛰고, 괴성을 지르면서, 기쁨을 표현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구요.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면 정말 기쁘죠. 더구나 우리 나라 최고의 대학인 S대학에 합격하면 얼마나 기쁘겠습니다. 그 선생님은 진짜 재수를 해서 S대학에 합격했고, 진짜로 “침대 위에서 미친 듯이 뛰고, 괴성을 지르면서, 기쁨을 표현하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생각해보니 저도 신대원에 합격했을 때, 정말 기뻤었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재수로 힘들게 합격했기 때문에 그 기쁨은 더욱 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합격 발표 당일 날에는 그 기쁨을 마음 껏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함께 신대원 입시 준비를 하던 분들과 같이 결과를 보기 위해 장신대를 갔는데요. 요즘은 합격을 거의 대부분 인터넷으로 확인하지만, 그 당시 장신대는 인터넷으로도 발표를 했지만, 가장 먼저 합격자 명단을 학교 게시판에 대자보로 붙였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결과 발표나는 날, 함께 공부하던 친구와 같이 대자보를 붙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행정실 직원분이 합격 명단이 적힌 종이를 들고, 학교 광장을 걸어오시는 거예요.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는데, 터질 것 같다 못해, “심장이 밖으로 나갔다, 들어왔다, 나갔다 들어왔다”하는 겁니다. 드디어 대자보를 붙였는데요. 여러분도 아마 그런 경험 있으실꺼예요. 합격자 명단 글자가 다 똑같은 크기로 쓰여져 있는데, 제 이름만 입체적으로 크게 올라오는겁니다. 진짜 그 기쁨이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기뻤죠. 그런데 그것도 한 순간이었습니다. 진짜 기분이 너무 좋은데, 이 기쁨을 엄청나게 표현하고 싶은데, 함께 합격 발표를 확인하던 친구가 합격하지 못한 것입니다. 기뻐 죽겠는데, 그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에 이 기쁨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겠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기쁜 소식을 먼저 부모님께 알려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모님께 굉장히 절제된 목소리로 합격 소식을 전화드렸어요. “어머니, 저 장신대 합격했어요”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는 격앙된 목소리로 “아들아 장하다, 축하한다,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다.” 계속 말씀하시는데, 저는 옆에 있는 친구 때문에 기쁜 감정을 억누르고, “어머니, 나중에 자세히 전화드릴께요.” 하면서 전화를 끊었죠. 그런데, 그 옆에 설상가상으로 장신대 7수 한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이 또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저에게 오시더니 제가 합격해서 축하한다고 밥을 사주시겠다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누가 누구한테 밥을 사줍니까? 당연히 제가 사야죠. 사주는 건 사주는 건데, 식사하는 내내 합격하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까, 기쁨을 도저히 표현할 수도 없고, 답답해 죽겠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알파교회 성도 여러분, 그런데, 지금 제가 뭐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전혀 관심 없으신 이야기인데, 제가 지금 너무 자세하고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들도 경험 하셨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에게 있어서 기쁜 일, 좋은 일이 있으면, 입이 근질 근질해서 참을 수가 없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서 그 기쁨을 나누고 싶어합니다.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기쁜 일을 경험하면, 간증하고 싶고, 이 기쁨을 나누고 싶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솔직한 마음이겠죠.

다윗이 시34편을 기록한 이유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다윗의 시인데요. 오늘 본문 말씀 1-3절까지의 말씀을 보시면, 다윗의 기쁨이 나옵니다. 함께 보시겠습니까?
1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2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다윗은 오늘 시편34편 말씀을 기록하면서, 무언가 굉장히 기쁘고 행복한 일을 경험한 것 같습니다. 특별히 1-3절까지의 말씀을 보시면, 다윗의 기분이 굉장히 좋은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다윗이 말하고 있는 기쁨에는 크게 2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 특징은 첫 번째로 그 기쁨을 주신 대상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다윗이 그 기쁨을 혼자만 경험하고 누리는 것이 아니라, 2절 후반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다윗은 곤고한 자들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누기 원했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왜? 곤고한 자들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누기 원했을까요? 이유가 있는데요. 그것은 다윗 본인 자신도 곤고한 상황 가운데 놓여 있었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힘들고, 곤고한 상황 속에 있었던 자신을 구원해 주셨고,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신 그 기쁨과 감사를 지금 현재 곤고한 상황 가운데 놓여 있는 자들과 함께 나누고, 그들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 싶어, 이 시편을 기록한 것입니다.

본문 연구

조금 전에도 언급했었지만, 시편34편을 쓰기 전 다윗은 곤고한 상황, 즉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34편 말씀을 보시면, 제일 처음 표제가 나오는데요. 뭐라고 쓰여져 있습니까?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편의 배경이 사무엘상 21장 10-15절까지의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죠.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다윗은 블레셋 역사상 가장 용감무쌍한 장수였던 골리앗을 물리친 자였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노래했고, 그로 인해 사울의 시기와 질투를 받은 다윗은, 도망자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죠.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골리앗과 싸웠고, 승리했는데, 그로 인해 생겨난 결과가 도망자 신세라니, 다윗은 얼마나 억울하고, 마음이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사울 왕을 피하여 다윗이 도망을 치다 치다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이스라엘의 최대의 원수였던 블레셋 가드”라는 곳이었고, 다윗은 가드 왕 아기스, 그러니까 오늘 시편 말씀에 의하면 아비멜렉에게 투항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한 것은 다윗이 죽인 골리앗이 바로 “가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현재 다윗이 처해 있는 상황을 쉽게 말씀드리자면 이런 것이죠. 명량해전에서 엄청난 숫자의 왜군을 무찌른 이순신 장군이 그 승리 후 수 많은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게 되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시기와 질투를 받아 도망을 다니다 다니다 이제는 더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서 왜나라 일본으로 도망을 쳤고,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투항을 한 것이라 생각하시면 이해가 잘 되실 것입니다. 도대체 이게 가능이나 한 일입니까? 가능하지 않죠. 그런데 다윗에게는 실제로 이러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블레셋 왕 아기스, 즉 아비멜렉의 신하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삼상21:11 말씀입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11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었던 다윗은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싶었는데,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의 정체를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떠한 평가를 받고 있는지까지 너무나도 자세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삼상21:12 말씀은 그 당시 두려웠던 다윗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12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다윗은 생각했겠죠. 내가 사울을 피하여 블레셋 가드까지 왔는데, 이제 사울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을 모욕하는 원수의 나라 블레셋 왕 아기스에게 죽게 되겠구나 따라서, 다윗의 입장에서는 지금 현재 펼쳐지고 있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이 한 일이라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욕했던 블레셋과 골리앗을 무찌른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말미암아 사울에게 시기와 질투를 받아, 도망자 신세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원수의 나라, 블레셋으로 도망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너무 마음이 힘들고 괴로운데, 이제는 설상가상으로 더 이상 피할 곳도 없고, 원수들에게 완전히 포위가 된 상태에 놓이게 된,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죠. 그러니 얼마나 두렵고 떨렸겠습니까?
하지만, 결과론적이지만, 다윗은 이 위기의 상황 속에서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는 등” 미치광이 흉내를 내는 기지를 발휘하여 이 위기의 상황을 잘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위기를 극복한 방법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신기한 것은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이러한 현실을 한탄하고, 낙망에 빠져 있을 법도 한대요. 그러나 다윗은 오히려 제가 설교 초반부에  언급했던 것처럼, 오늘 말씀 시편34편을 썼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1절에서 3절까지의 내용을 보게 되면, 자기 자신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기쁨을 곤고한 자들과 나누기 원하고, 심지어는 2절 말씀을 보시면,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겠다”고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다윗은 왜 이와 같이 기뻐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며, 하나님을 높여 드리고 있을까요? 그 이유가 바로 오늘 본문 말씀 4절에 나옵니다.
4절 말씀 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34: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속에서 다윗은 무엇을 한 것입니까? 그러니까 삼상21장 12절과 13절 사이,
[삼상21:12-13] 12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13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이 사이의 시간 동안에 무엇을 한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며, 부르짖었습니다. 블레셋 왕 아기스, 아비멜렉과 그 신하들에게 죽임을 당할 그 위기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것이죠.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나요? 다윗은 미친 체하고 수염에 침을 흘리는 등, 미치광이와 같은 행동을 통해 놓임을 당하게 되었죠. 그렇다면, 이 위기의 상황 속에서, 미친 체하고 수염에 침을 흘리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다윗에게 지혜를 주신 분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시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와 같은 아이디어가 생각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인생에 있어서 곤고한 상황, 위기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간구에 응답하셨으며, 다윗을 모든 두려움에서 건져내신 것이었습니다. 6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다윗은 지금 현재 곤고한 상황에 놓여있는 자들, 그러니까 힘든 상황 가운데 놓여 있는 자들에게 다시 강조하며 노래합니다. 자신이 곤고한 상황에 놓여 있었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신의 “모든” 환난에서 그러니까, 한 번, 두 번 환난에서 구원해주신 것이 아니라, 모든 환난에 구원해주셨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사랑하는 알파교회 성도 여러분, 그런데 이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곤고한 상황 가운데 있을 때, 자신의 기도 가운데 응답하시고,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께 대한 기쁨을 2절 말씀과 같이 곤고한 상황 가운데 빠져 있는 자들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누면서, 특별히 그 곤고한 상황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진심으로 권면하고 있는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오늘 본문 말씀 8절 말씀입니다. 다 함께 8절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방금 읽은 말씀과 같이 다윗은 곤고한 상황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고 있는데요.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당부하고 있죠. 그리고 다윗은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는 것이야 말로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복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입니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되는 것이 진짜 복이라는 것입니다.
왜그럴까요? 이것이 너무 중요한 부분인데요. 우리는 우리의 곤고한 상황이 해결되니 그것이 복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진짜 큰 복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게 되고, 그로 인해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고 의지하게 되니 이것이 우리가 기도 응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복인 것입니다. 여러분들, 기도 응답의 맛을 경험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만약 없으시다면, 반드시 기도 응답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시는 알파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 응답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한 번 맛보면,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아니, 기쁨이라는 표현으로는 너무 부족하고, 희열이 넘친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그 기도 응답의 현장이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의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번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 인생을 살아가다가 곤고한 상황에 빠집니까? 그렇지 않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인생을 살다보면, 곤고한 상황에 빠지곤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믿는 사람만 기도의 응답으로 삶의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삶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들 나름대로 삶의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며 살아갑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만 소망하는 것이 이루어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믿지 않는 사람들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최선을 다해 그들이 바라는 바 소망하는 것들을 이루면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둘 사이에 무엇이 차이가 나는 것입니까? 크게 두 가지 차이가 나는데요.
첫 번째로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곤고한 상황 속에 기도 응답으로 문제가 해결되면,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뿐만 아니라 그 만남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되고, 그 만남으로 인해 하나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일까요? 그 경험으로 인해, 삶을 살아가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또 기도하고,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되고, 또 더 가까이 가게 되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고, 결국엔 궁극적으로 구원의 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고, 내가 내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면 어떻게 될까요? 그 경험을 통해, 그는 하나님 없이 자신 스스로를 의지하는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고, 결국엔, 궁극적으로 구원의 길과 멀어지는 삶 즉 파멸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죠. 엄청난 차이입니다.
뿐만 아니라 두 번째 차이는 일이 해결되어지는 스케일에서 차이가 납니다. 기도 응답을 통해 해결되어지는 일들은 보통 우리들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들이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이 일들은 대부분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는 크기로 일이 해결되어지다보니, 우리들은 우리들의 기도를 통해 그 일들이 해결되어지면, 우리의 입술로 이러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 시34편 10절 말씀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젊은 사자가 어떻게 궁핍하여 주릴 수가 있겠습니까? 늙은 사자가 궁핍하고, 주린 것이 당연한 이치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호와를 의지하고,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그를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날마다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 주시니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으며, 그가 하는 모든 일들이 다 형통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내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제가 설교 제목으로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정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면, 마음이 평안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앞서 설명해드렸듯이,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되는 것이, 하나님과의 만남의 현장이라고 말씀드렸죠. 사9:6 말씀에서 우리 주님을 뭐라고 표현하고 있냐하면, 평강의 왕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샬롬의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생의 곤고한 상황 가운데,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평강의 왕, 샬롬의 왕이신 우리 주님을 만나게 되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진정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알파교회 성도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함께 기도하십시다. 저도 여러분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알파교회 홈페이지를 보시면, 중보기도 요청하는 배너가 있어요. 신청하시면 제가 확인하고 함께 기도합니다. 그것을 이용하기 힘드신 분들은 저에게 직접 문자나 카톡을 주셔도 좋습니다. 함께 기도하여,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고, 진짜 참된 평안을 주 안에서 함께 누리며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알파교회 성도 여러분, 혹시 곤고한 상황 가운데 계십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다윗과 같이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겨 주님께서 모든 환난에서 구원해주시는 은혜를 경험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날마다 맛보아 알게 되시는 알파교회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또한 마지막으로 더 나아가,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알파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