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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3:27-4:12 하나님의 지혜로 행하라

영상설교

음성설교

줄거리

할렐루야 오늘 이 새벽에 알파교회 새벽기도회에 참여하시고 또한 온라인으로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평강이 가득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제 본문 말씀 마지막 부분에서는 요압이 전령들을 보내어 아브넬을 다시 돌아오도록 하는 내용에서 끝이 났는데요.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요압이 왜 아브넬을 다시 돌아오도록 했는지 그 이유가 나오죠. 27절 말씀을 보시면, 요압이 아브넬을 죽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30절 말씀을 보시면, 이 일은 요압 혼자 독단적으로 진행한 것이 아니라, 그의 동생 아비새도 이 일에 함께 동참하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요압과 아비새가 아브넬을 죽인 이유가 있었죠. 자기의 동생 아사헬을 죽인 것에 대한 복수로 이 일을 진행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넬이 요압의 동생 아사헬을 죽인 것은 사적인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공적인 전쟁의 자리에서 일어난 일인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진짜 복수를 하려면 공적인 전쟁의 자리에서 해야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압과 아비새는 그렇지 않았죠. 사적인 자리에 불의한 방법으로 복수를 한 것입니다. 따라서 요압의 이 행동은 명분이 없는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압의 이 명분 없는 행동은, 늘 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다윗을 너무 곤란하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표면적으로는 요압이 사적으로 복수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핑계에 불과하고, 실제적으로는 다윗이 뒤에서 사주한 것이 아니냐며, 다윗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이 소식을 듣자 마자, 이 한 사건으로 인해 그 동안 준비해왔던 거사를 그르칠 수도 있다고 판단하여, 이 문제에 관하여 요압과 확실하게 선을 긋죠. 28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삼하3:28] 그 후에 다윗이 듣고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
이처럼 공식적으로 자신이 이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음을 밝힐 뿐만 아니라, 29절 말씀을 보시면, 이 사건의 주범인 요압을 저주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정도로는 자신이 이 사건과 상관 없다는 것을 밝히는 부분에 대해서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진짜 이 사건과 관련이 없음을 백성들에게 증명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죠.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 31-35절까지의 말씀을 보시면, 다윗은 진심을 다해 아브넬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를 장사하였으며, 심지어 35절 말씀을 보시면, 금식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을까요? 36-37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삼하3:36-37] 온 백성이 보고 기뻐하며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무리가 다 기뻐하므로 이 날에야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이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이 한 것이 아닌 줄을 아니라
다윗이 진심을 다해 아브넬의 장례를 치르자 37절 말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죠. “이 날에야” 그러니까 이 날에서야 온 백성들과 온 이스라엘이 아브넬을 죽인 것이 다윗이 아니라는 사실을 온전히 믿게 되었고, 그 사실이 너무 안심이 되어 함께 기뻐했던 것입니다. 그 말인 즉슨, 제가 앞서 우려했던 것처럼, 많은 백성들이 이 사태를 순수하게 보지 않고 다윗을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다윗은 요압을 내칠 수 없었습니다. 39절 말씀에 의하면, 일단 요압의 힘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왕이었던 다윗도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세력이 강했던 것이죠.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아직까지는 다윗의 왕권이 든든히 서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아직은 요압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다윗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만약이지만, 요압이 아브넬을 죽이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상상이지만, 아브넬이 큰 공을 세워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기에, 아브넬은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이고, 다윗의 왕권에 큰 위협이 되는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인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측할 수 없는 수 많은 변수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지혜를 주셨기 때문에, 다윗은 예상치 못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4장 말씀이 시작되는데, 아브넬의 죽음은 이스보셋에게 있어서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아브넬은 자신의 왕권에 큰 위협이 되는 존재임과 동시에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왕권을 지켜주었던 존재였기 때문인 것이죠. 그런데 아브넬이 죽게 되자, 이스보셋의 왕권은 급속도로 붕괴되기 시작하고, 결국은 그의 군지휘관이었던 레갑과 바아나가 반란을 일으켜 이스보셋을 죽이고, 그의 머리를 가지고 다윗에게 투항을 하게 되죠. 이스보셋의 머리를 다윗에게 바치면 다윗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삼하1장에 나와 있는 것처럼 과거 시글락에서 사울을 죽였다고 말하던 아말렉 청년을 처형했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들을 처형하게 되고,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 말씀의 줄거리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행하라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서 다윗은 아브넬로부터 너무 기쁜 소식을 전해듣게 되었죠. 사실 다윗은 아브넬에게 아무런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아브넬이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도록 판을 다 깔아놓고, 다윗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나게 되었구나,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왔구나,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다윗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죠. 요압과 아비새가 아브넬을 죽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왕이 될 수 있도록 다 깔려져 있던 판을 그들이 한 순간에 다 뒤집어 엎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뒤집어 엎어진 수준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오히려 다윗이 요압을 통해 아브넬을 죽이도록 사주한 자로 오해까지 받게 되는 위기의 상황 속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위기의 상황 속에서, 다윗이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 있는데요.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지혜죠. 하나님의 지혜가 다윗에게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이 위기를 잘 극복하게 되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지혜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일에 대해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였던 것입니다. 진심은 통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다윗은 진심으로 아브넬을 위해 애도했고, 직접 장례를 주관하였으며, 애가를 지어 불렀고, 해 지기 전에 떡을 먹는 것도 거절하였죠. 이심전심이라고 아브넬을 향한 다윗의 이 진심어린 마음이 백성들의 마음에도 그대로 전하여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이와 같은 지혜를 얻게 되었을까요? 사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였다는 표현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볼 때, 다윗이 한 모든 행동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행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시의적절한 행동으로 이 위기를 잘 극복해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긴급한 위기의 상황을 만날 때가 많이 있죠. 하나님께 기도조차 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속히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맞는지 충분히 기도조차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속히 결정하고 일을 추진해 나아가야 할 때도 있죠.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다윗과 같이 지혜로운 행동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힌트를 우리는 다윗의 수 많은 시편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무슨 의미이냐면, 위기가 생겼을 그 당시에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위기가 없는 상황에서도 매일 매일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긴박한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실수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이 위기를 잘 극복해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시37편은 다윗이 지은 시인데, 시37:30-31까지의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시37:30-31] 의인의 입은 지혜로우며 그의 혀는 정의를 말하며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시간 관계상 말씀을 다 찾을 수는 없지만, 방금 읽은 말씀 그러니까 시37편에 나오는 의인은 여호와를 기뻐하며 모든 길을 여호와께 맡기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방금 읽은 말씀에 의하면, 그들의 입은 지혜롭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정의를 말한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걸음은 언제나 실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다윗의 뜻이 되고, 다윗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 되니까, 언제나 실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죠. 마치 요15:7 말씀과 같이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말씀과 같은 역사가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기 원하고 계십니다. 위기의 상황 속에서만 우리의 삶에 개입하기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와 늘 동행하시고 함께 하시길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따라서 오늘 하루도 아니 매일 매일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십시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시다. 그렇게 하나님의 지혜로 일하시면, 반드시 여러분들이 행하는 모든 일들의 결과가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될 줄 믿습니다. 따라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지혜로 승리하는 삶 사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