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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23:1-39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의를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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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 이 새벽에 알파교회 새벽기도회에 참여하시고 또한 온라인으로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평강이 가득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삼하23장 말씀입니다. 총 두 가지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첫 번째 말씀은 삼하23:1-7까지의 말씀으로 다윗의 마지막 말이 나와 있고요. 두 번째 말씀은 삼하23:8-39까지의 말씀으로 다윗의 용사들에 대한 목록이 나타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이 두 부분의 말씀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다윗의 마지막 말

먼저 첫 번째 말씀으로 삼하 23:1-7까지의 말씀인데, 다윗의 마지막 당부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삼하23:1]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고 시작하고 있죠. 또한 1절 말씀에서 다윗은 자기 자신을 세 가지로 표현하고 있는데요. 첫 번째는 “높이 세워진 자”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다윗은 비천한 신분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한 자가 되었죠. 두 번째로는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구약에서 기름 부음을 받는 세 가지 신분이 있죠.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입니다. 따라서,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은 왕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이와 같이 소개한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히브리어 원어를 통해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이스라엘의 노래 중 아름다운 것을 부르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시편을 많이 기록했기 때문에 이와 같이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2절 말씀에서 여호와의 영을 통해 말씀을 하고 있는데요. 3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삼하23: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뭐라고 말씀하고 있냐하면,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왕은 공의로 다스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왕이 공의로 다스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게 될 때, 4절 말씀과 같은 상황이 생기게 되는데, 4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면,
[삼하23:4]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다윗 이후 이스라엘을 공의로 다스리는 왕이 생겨나면, 이스라엘은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 햇빛을 받아 땅에서 움이 솟는 풀과 같을 것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5절 말씀에서 내 집이 하나님 앞에서 이같지 아니하냐 라고, 하나님이 자신과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으니 그와 같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방금 읽은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왕이 공의로 다스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우리들도 동일하게 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다윗 이후로 거의 대부분의 왕들이 공의로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못했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가 되지 못했죠. 하나님을 경외함은 십계명의 제1계명부터 제4계명에 해당하는 “하나님 사랑”에 해당하구요. 공의에 해당하는 것은 십계명의 제5계명부터 제10계명에 해당하는 “이웃 사랑”에 해당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결국 다윗 이후의 대부분의 왕들은 하나님 앞에서 십계명을 어긴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가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설 수가 없었던 것이죠. 십계명은 왕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라면, 모든 자들이 다 지켜야 하는 것들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오늘 말씀을 들으시는 우리 모두들도 하나님 앞에서 십계명을 잘 지키고,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또한 공의로운 삶을 이 땅 가운데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윗의 용사들의 목록

두 번째로 오늘 본문 말씀 8-39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다윗의 용사들에 대한 목록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세 명의 용사들이 언급되어 있는데요.
첫 번째 용사는 ‘요셉밧세벳’이라는 자입니다. 그는 8절 말씀을 보시면, 단 번에 적군 800명을 쳐 죽였을 정도로 용맹한 자였구요. 두 번째 용사는 ‘엘르아살’이라고 하는 자인데, 그는 10절 말씀에 의하면, 손이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쳐서 크게 승리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용사는 ‘삼마’라는 자인데, 많은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칠 때, 홀로 도망치지 않고,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큰 구원을 이룬자였던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 세 용사에 대한 무용담 한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다윗이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라고 말이죠. 14절 말씀에 의하며 그 당시 베들레헴은 블레셋 사람의 요새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 용사들은 다윗의 그와 같은 말을 듣자마자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왔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만큼 다윗에게 있어서 충성스럽고 용맹하였던 장수들이 앞서 언급해드렸던 세 명의 장수였던 것이죠.
뿐만 아니라 18-19절까지 말씀을 보시면,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가 언급되어 있는데, 그는 창을 들어 삼백 명을 죽였었고, 또한 20-23절까지의 말씀을 보시면, 브나야가 나오는데요. 그는 사자 한 마리도 쳐서 죽였을 만큼 용맹한 자였습니다. 그리고 24절부터 39절까지는 아사헬을 비롯하여 용사 한 명씩 다 언급하고 있는데, 그 총 숫자가 마지막 39절 말씀을 보시면, 37명이라고 기록하고 있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방금 읽은 다윗의 용사들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여러분들께 간략하게 용사들에 대해서 설명을 해드렸었는데요. 여러분들 다윗의 용사들의 목록을 보시면서, 뭔가 이상한 점 하나 느끼시지 못하셨습니까? 아니면 뭔가 허전한 점 하나 느끼시지 못하셨습니까? 사실 있어야 할 이름인데, 언급되지 않은 이름이 있죠. 그는 바로 요압입니다. 18절 말씀을 보시면,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라고 언급하면서, 아비새는 용사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데, 요압은, 누구의 아우라고 소개하는 명단에만 이름을 올렸을 뿐, 정작 요압 자신은 다윗의 용사들의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사실 요압만큼 다윗 옆에서 수 많은 전쟁을 치르며 공을 많이 세웠던 장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만큼 다윗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던 장수가 바로 요압이었는데,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인정을 받았던 만큼 요압은 다윗의 허락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죽이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너무 많이 죽였습니다. 제일 처음 사적인 복수를 위해 아브넬을 죽였구요. 그 다음에는 다윗의 아들 압살롬을 죽였죠. 그리고, 아마사 자신보다 다윗에게 인정을 받는 것 같아보이자 그도 죽여버리죠. 전쟁이라는 전쟁은 다 다니며 공을 많이 세웠지만, 다윗의 권위에 도전하였기 때문에, 마지막 다윗의 용사들 리스트에 그 이름을 올리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제일 처음 언급되었던 세명의 용사들은 다윗이 그냥 한 말이었는대도, 블레셋 적진을 뚫고 우물물을 길어 올 정도로 충성된 자들이었는데, 그것과 비교해 본다면, 요압은 많이 부족한 자였던 것입니다.
요압의 일생을 묵상하면서 생각나는 구절 하나가 있었는데요. 고전9:27 말씀입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사도 바울은 한 가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고전9장 말씀을 보시면, 바울은 썩지 않는 승리자의 관을 얻기 위해 열심히 달음질하고, 모든 일에 절제하며, 심지어 스스로의 몸을 쳐 복종케 하는 삶을 살아갔다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그 이유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방금 제가 읽어드린 고전 9:27 말씀과 같이 이방인들에게 실컷 복음을 다 전파하고, 그들이 구원 받는 사명을 다 감당하였는데, 후에 자신이 변질되어 자기 자신은 구원받지 못하는 자가 되면 어떠할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환난과 핍박이 너무 많았기에, 복음에 대한 변절자들이 하나 둘 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바울 자신도 두려울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사도 바울은 항상 자신의 몸을 쳐서 스스로 복종케 하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요압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 수 많은 전쟁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지만, 결국에는 겸손치 못하여, 다윗의 용사들의 리스트에 그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에게는 충성할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충성을 해야죠. 다윗에게 있어서, 용맹하였던 세 용사가 있었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 우리들은 하나님께 있어서, 충성스럽고 용맹스러운 세 용사와 같은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오늘 두 가지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로,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왕이 공의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했던 것처럼, 공의로운 삶,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사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다윗에게 있어서 충성스럽고 용맹한 용사들이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을 다하며,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위해, 승리자의 관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 사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