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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을 전하는 삶을 살라(약2: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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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할렐루야 오늘 이 시간 알파교회 주일예배 가운데 참여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평강이 충만히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울러 온라인으로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들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가득하시길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트레스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디스트레스(distress)고 나머지 다른 하나는 유스트레스(eustress)라고 합니다.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스트레스는 디스트레스입니다. 자신에게 좋지 않은 기분 나쁜 일, 억지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을 하게 될 때 받는 스트레스인 것이죠. 이런 스트레스는 사람을 지치게 하고 늙게 만드는데, 심하면 사람을 병들게 하고, 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의 90%가 디스트레스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죠. 오늘날 현대인들이 받는 이런 저런 근심과 염려와 불안 그리고 긴장으로 인한 문제 등 이 모두는 다 디스트레스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되는 스트레스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제가 앞서 언급해드렸던 것처럼 유스트레스라고 부릅니다. 이 단어는 유익한 스트레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기분 좋은 일, 좋은 결과를 기대하게 하는 일, 가슴 설레는 일들을 앞두고 느끼게 되는 긴장감을 말합니다. 애인과의 데이트를 앞두고 갖게 되는 긴장감이나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의 흥분이나 긴장감 등도 이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경우에 생기게 되는 유스트레스를 즐기게 되죠. 유스트레스는 즐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건강하고 오래 살기 위해서는 유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현실은 지금 현재 우리의 상황이 유스트레스보다는 디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는 형편이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근심과 염려와 불안과 긴장 등 이러한 것들과 항상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참된 평안이란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은 염려와 근심이 없었을 것 같은데요. 요한복음 14장 말씀을 보게 되면, 제자들도 염려와 근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14:1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조금 전 읽은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말씀하고 계시는데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이유는, 지금 현재 제자들이 근심하고 염려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죠. 요14장 말씀을 보게 되면,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대화가 나오는데, 도마, 빌립, 유다 이렇게 세 명의 제자들와의 대화가 나옵니다. 그런데 대화의 분위기를 보게 되면, 제자들이 염려하고 근심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화를 보게되면 제자들이 염려하고 근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되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자꾸 떠나신다는 것입니다. 어디로 떠나신다고 말씀하시냐하면, 내 아버지의 집에 가신다고 말씀하고 계신데, 그 이유는 제자들을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과 이별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 이 땅에서 엄청난 명예와 권력을 누릴 것만 같아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따랐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떠나시겠다고 하시니,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불안하고 염려가 몰려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방금 전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가운데에서 어떠한 상황을 만나게 될 때에,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상황이라면 평안이고, 예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시는 상황이라면 불안이라는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믿으면 평안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믿지 않으면 불안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 자체가 평안이시고, 샬롬이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9월5일 새벽기도회 말씀 때 이미 말씀드렸는데요. 혹시 못들으신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다시 말씀드립니다. 평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샬롬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샬람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샬람이라는 단어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배상하다. 지불하다. 완성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샬롬” 평안이라는 것은 누구가가 대신 배상하고 지불하였기 때문에, 다른 그 누군가가 누리게 된다는 것이죠. 이와 관련된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사53:5 말씀입니다.
[사53:5]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샬람)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샬롬)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샬람)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샬롬)
방금 읽은 말씀에 나오는 평화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진짜 샬롬이라는 단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요14:27 말씀입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장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도 우리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의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평안하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과 우리들은 계속 근심하고 두려워 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믿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평안은 어떻게 오냐하면, 예수님을 제대로 믿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믿을 때 참된 평안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에 관하여

그렇다면, 나 자신이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믿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질문과 관련하여 야고보서 2:14-26까지의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신약 성경을 읽다보면, 믿음이라는 것이 다 같은 믿음은 아닌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참 많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 있기 때문인 것이죠. 믿음에 관하여 어떠한 표현들이 나오는지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1. 믿음이 작은 자들아 2.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3.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4.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5.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방금 제가 읽어드린 이 믿음의 표현들은 마태복음에 나온 내용들만 여러분들께 소개해드렸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라고 해서 다 같은 믿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방금 전 제가 여러분들에게 소개해드린 믿음에 관한 예들 가운데, 예수님께 칭찬 받았던 믿음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행함인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질병을 가지고 있었거나, 자신의 친구가 질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질병을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친구의 질병도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믿음만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믿음에 대한 생각, 즉 신념만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오는 행함으로 말미암아 병고침을 받고, 죄사함을 받고, 진정한 평안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약2:26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이처럼 야고보 사도는 믿음에 있어서 행함이 중요하기 때문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쓸모가 없는 믿음

그런데, 야고보 사도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죽었다고 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 죽었다고 하는 것은 쓸모가 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죽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인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지난 주 금요일까지 에베소서 본문을 가지고 새벽기도회 말씀을 전했는데, 엡2:10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해주신 이유가 나옵니다. 제가 읽어드리죠.
[엡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에베소서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태초부터 우리를 예비하셨는데, 그 이유는 이 땅에서 예수님 대신 선한 일을 행하라고 예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참된 평안, 즉 샬롬이셨던 것처럼, 이 땅에 참된 평안을 전하고 나누는 일, 즉 희생의 사랑으로 샬롬을 전하는 일, 더 나아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 그 일들을 위해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예수님 보시기에 쓸모가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죽어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보시기에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주는 유익

뿐만 아니라, 두 번째로 죽었다고 하는 것은 유익이 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약2:14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방금 읽은 말씀에 의하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유익이 없다고 하는데, 죽고 나면 이 세상에서 그 어떠한 유익도 누릴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그와는 반대로 행함이 있는 믿음은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유익이 있냐하면, 먼저는 믿음을 행하는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유익이 있습니다. 앞서 믿음에 관하여 소개해 드렸던, 마태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 믿음이 크다고 칭찬 받았던 자들과 같은 경우, 그들이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갔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 자신이 병고침을 받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자녀가,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에 대한 유익을 자기 자신이 직접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경험하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 것이죠. 그 결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샬롬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이 땅에서 주님의 선한 사역에 동참하게 될 때에 우리는, 주님께서 일 하시는 놀라운 기적의 현장을 경험하며, 우리의 신앙 또한 점점 더 성숙해져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익이 있는 것입니다. 제가 설교 초반부에 여러분들에게 스트레스와 관련하여 소개해드렸죠. 지금 현재 우리 사회는 고령화 사회가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90세가 넘는 분들이 많이 계시죠. 100세 시대라고 말한지도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 사회에서 은퇴하는 시기가 60세 정도가 되는데, 100세시대니까 60세에 은퇴를 하면, 30-40년 정도는 인생에 있어서, 공백기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할 일이 갑자기 없어지고, 가르쳐준다는 사람도 없고,
배울 것도 없고, 새로운 일도 없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도 없고, 멍하니 있는 시간이 갑자기 많아지게 되는 것이죠.
다른 말로 하면 유스트레스가 없어지는 시기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삶에 있어서 새로운 설레임이나 긴장이 없어지니, 우울증도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선한 사역에 동참하면 어떻게 되는 지 아십니까? 유스트레스가 분비됩니다. 내 몸에 유익이 있는 것입니다. 앞서 제가 말씀드렸죠. 유스트레스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까? 유익한 스트레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기분 좋은 일, 좋은 결과를 기대하게 하는 일, 가슴 설레는 일들을 앞두고 느끼게 되는 긴장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목격하고 경험하는 것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요? 이보다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보다 더 가슴 설레이는 일들이 어디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나아가면, 먼저는 나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고, 주님이 내 안에 찾아오셔서, 내 안에 주님의 평강이, 주님의 샬롬이 충만히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행함이 있는 믿음은 나 자신만 유익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유익을 누리고, 내 안에 있는 주님의 평강을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내 안에 충만히 넘치는 주님의 샬롬이 나와 함께 하는 공동체 모든 사람들에게도 충만히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유

그렇다면 왜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나아가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입으로, 머리로만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약2:15-16까지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약2:15-16]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우리 주변에 힘들고 어려운 자들, 그러니까 주님의 샬롬이 필요한 자들이 있는데, 앞서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입으로 말만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 아무개가 힘들고 어려운 데 어떻하지? 아 아무개가 먹을 것이 없는데 어떻하지? 머리로 생각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힘들고 어려운 그 사람을 내 생각에 떠올리게 하셨다는 것은, 행함이 있는 믿음을 실천할 기회를 주신 것인데, 머리로 생각만하고 입으로 말 만하고 끝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입니다. 사1:12 말씀에 의하면 이러한 자들을 뭐라고 부르는가하면 내 마당만 밝을 뿐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읽어드리죠.
[사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이것이 무슨 의미이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열심히 제사를 드렸습니다. 열심히 예배를 드린 것이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무수한 제물,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로 하나님께 열심히 제사를 드렸단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는가 하면,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심지어는 15절 말씀을 보시면,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듣지 않겠다고까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 그럴까요? 열심히 예배드렸으면 기도를 들으셔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듣지 않겠다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사1:17 말씀입니다.
[사1: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이들은 열심히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예배는 드렸지만, 선행을 행하지 않았고, 정의를 구하지 않았으면, 학대 받는 자들을 도와주지 않았고, 고아와 과부를 돕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고보서 말씀으로 표현하자면,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나아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편안과 평안을 착각하지 마세요. 아무 일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편안한 것이지, 평안한 것은 아닙니다. 예배만 드리고,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입으로만, 머리의 생각으로만 신앙생활을 하면, 몸은 편안할 수 있어요. 하지만 평안하진 않습니다. 왜냐구요? 참된 평안은 예수님과 함께 할 때에만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평안은 예수님이 있는 그 곳에 나도 함께할 때 경험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주님의 선한 사역에 동참할 때, 유스트레스를 경험하며, 설레임을 경험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너무 많이 찔렸습니다. 사실은 제가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진 자였던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만 머물러서, 교회 밖,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소외되고 힘들고 어려운 자들을 전혀 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돌아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그러한 마음을 저에게 부어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알파교회는 소외된 분들 어려운 분들에게 예수님의 평안을 전하고 섬기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5K사역을 시작하려고 하는 것이죠. 지난 주 화요일 아내와 함께 만수5동 행정복지센터에 방문했습니다. 저희 알파교회가 아직은 개척한지 얼마되지 않아, 봉사자 인원도 부족하고, 예산도 부족하기 때문에, 만수5동에 사시는 형편이 어려우신 5가정에게 매 주마다 반찬 3가지씩 섬기는 사역을 1년 동안 진행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행정복지센터에서는 너무 감사하다며, 일단 회의를 거쳐서 결정이 되면 알려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는 이제 알파교회의 이름으로 10월 둘째 주부터 이 5K 사역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일주일 한번씩 만수5동 주변 지역에 쓰레기를 줍는 사역도 진행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우리의 샬롬이시고, 주님은 우리가 그 샬롬을 세상에 널리 널리 전파하길 원하고 계십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나아가길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와 같이 쓰임 받으셔서 예수님으로부터 대한민국에서 이 만한 믿음을 가진 자를 본 적이 없다고 칭찬받으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