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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5:18-6:10 참된 성도로서의 삶을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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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제기

할렐루야 오늘 이 시간 알파교회 주일예배 가운데 참여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평강이 가득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설교의 제목은 “참된 성도로서의 삶을 살라”인데요.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곳에는 저처럼 목사라는 직분을 가진 자도 있고요. 또한 안수집사님도 계시고, 권사님도 계시고, 집사님도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이와 같은 직분들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목사이기 이전에, 안수집사이기 이전에, 권사이기 이전에, 집사이기 이전에 우리 모두는 성도인 것이죠. 우리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도라는 표현을 참 많이 사용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성도는 무엇입니까? 제가 사전을 찾아보니까 성도를 이렇게 정의 내리고 있더라고요.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속된 세상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 일원으로 부름받은 자들]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속된 세상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 일원으로 부름받은 삶을 살고 계십니까? 그렇기 때문에 성도라는 직분을 정의 내릴 때 이와 같은 의미가 너무 중요한 것이죠. 그러므로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속화된 세상 속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 일원으로 부르심을 받은 삶을 살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속화된 세상 속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 일원으로 부름받은 삶은 과연 어떠한 삶일까요? 저는 오늘 이와 같은 내용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

이와 관련하여 오늘 본문 말씀 고후5:18 말씀은 우리가 성도로써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즉 세속화된 세상 속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 일원으로 부르심을 받은 삶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고 있는데요. 고후5:18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고후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방금 읽은 말씀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 계시는 성도로서의 부르심을 받은 삶은 화목하게 하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라고 하는 직분은 화목하게 하는 직분이라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기름부음을 받는 세 가지의 직분이 있죠.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 이렇게 세 가지 직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와 제사장, 이 두 직분은 이들이 감당하는 역할에 있어서 대비가 되는 직분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에게 대언하는 직분인 반면에, 제사장은 인간 편에 서서 제사를 통해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일을 감당하는 직분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직분인 것이죠. 이와 같은 사명을 감당하셨던 대표적인 인물이 있죠. 누구십니까? 예수님이시죠.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 4:14 말씀에서는 예수님께 대하여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제가 읽어드리죠.
[히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되어주셔서 우리의 모든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켜주시고, 화목하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고후5:18 말씀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과 같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그러므로 하나님께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목을 의미하는 것보다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들도 예수님과 같이 이 땅에서 제사장과 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벧전2:9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벧전2:9a]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듣고 계시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는 왕 같은 제사장들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전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이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도록 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전도이며,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라고 부르심을 받은 것이 바로 성도의 삶이며 성도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복음 전하는 삶을 반드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죠. 따라서, 고후5:19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고후5: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방금 읽어드린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부탁하셨습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복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20절 말씀을 보시면,
[고후5: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말씀하고 계신데,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우리를 이 땅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사신, 그러니까 하나님의 대사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는 성도이고, 하나님으로부터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았으며, 예수님을 대신하여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대사로서 겸손하게 쓰임 받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쓰임 받으시는 알파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

그러면서 고후6:1 말씀은 더 나아가 성도들을 가리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는데요. 고후6:1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고후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방금 읽은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가리켜 새롭게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 번역 된 이 단어는 헬라어로 “쉬넬게오”라는 단어인데요. 동역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하나님과 함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일하는 동역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만약 하나님과 함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일하게 되면 우리들은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처럼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를 부르셨고, 우리들과 함께 동역자로서 일하기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고후6:1 말씀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그 구체적인 이유가 2절 말씀에 나오는데, 제가 읽어드리죠.
[고후6: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무슨 의미이냐 하면, 이러한 것입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다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구원이 필요한 날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와주시고 긍휼히 여겨주셔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고 구원을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은혜을 받고 구원을 경험한 자이기에 이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방금 읽은 2절 후반부 말씀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그러니까 이것이 무슨 의미이냐하면,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경험한 자들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지 못한 자들이 많이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은 자들에게 있어서는 바로 지금이 은혜를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경험한 자들이기에 지금 현재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구원이 필요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전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이 필요한 자들에게 복음 전하는 삶을 반드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죠.

비방 받지 않고 거리끼지 않기 위하여

그러면서 고후6:3 말씀은 우리가 성도로서, 또한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또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가진 자로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해야할 일들에 관해 말씀하고 있는데요. 고후6:3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고후6:3]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방금 읽은 말씀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이 직분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방을 받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3절 중반 부에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방금 읽은 말씀에 나오는 표현 중 “거리끼지”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프로스코페”라는 단어인데요. ‘넘어짐’ ‘죄를 지을 기회’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다보면 넘어지는 일이 생기거나 죄를 지을 기회가 반드시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러다보면 당연히 이 직분을 감당하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처럼 넘어지지 않고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떠한 노력을 해야하냐하면,
먼저 첫 번째로,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며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4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고후6: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그러니까 방금 읽어드린 말씀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우리들은 모든 사역 가운데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심령으로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경험해보셨겠지만, 교회에서 사역을 할 때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다보면 어떻습니까? 불평이 생기게 되고, 그러다보니 넘어지게 되고 죄를 짓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우리의 직분이 다른 자들로부터 비방을 받게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억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역을 계속해서 감당해 나아가야 한다면, 하나님께 자원하는 심령을 달라고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성도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직분을 감당할 때, 견디며 인내하며 감당해야 하는데요. 4절 중반부터 5절까지의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죠.
[고후6:4-5]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방금 읽은 말씀을 보시면,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이렇게 계속 연결되어 있는데요. NIV성경을 보면 “많이 견디는 것”하고 세미콜론으로 구분되어 있구요. “환난과 궁핍과 고난”하고 구분되어 있고,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하고 구분되어 있고,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이렇게 또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 가지씩 구분되어 있는 총 9가지의 고난을 어떻게 해야하냐하면, 많이 견디고, 인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첫 번째 묶음인 “환난과 궁핍과 고난”은 일반적으로 사도 바울이 겪은 고난을 의미하구요. 두 번째 묶음인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은 사도 바울은 겪은 특정한 고난의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로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은 사도 바울 자신이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감당하면서 본인 스스로가 열심히 사역하다가 겪게된 그러니까 자발적으로 감당하게 된 고난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4절 말씀에서 언급했던 “견디다”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휘포모네’라는 단어인데요. 이 단어는 굉장히 역설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인내’, ‘지속’, ‘견딤’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냥 인내와 지속과 견딤의 의미가 아닙니다. 그 앞에 수식어가 붙는데요. 즐거운 혹은 희망찬, 인내와 지속과 견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즐거운 인내, 희망찬 인내가 어디 있습니까? 인내는 쓰죠. 하지만 무엇은 단가요? 열매는 달죠. 따라서 이 인내는 반드시 무엇이 있는 인내인 것입니까? 반드시 즐겁고 희망찬 열매가 있는 인내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난과 궁핍과 고난이 있고, 수고로움이 있다 하더라도 그 후에는 반드시 즐겁고 희망찬 열매가 있기에 인내하며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인지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난과 고난이 없었으면 좋겠고, 수고로움도 없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롬8:17 말씀입니다. 제가 읽어드리죠.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들은 이 땅에서 성도로서의 삶을 살다보면, 고난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이 뿐입니까? 마7:13-14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좁은 문이고, 길도 협착하다고 말씀하고 계시죠. 그런데, 주님을 따르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문이 크고 길이 넓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이것은 사탄의 속삭임인 것이죠.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누구나 쉽게 가고자 하는 길이라면, 그 길은 절대로 주님과 함께 걷는 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지만 절대로 실망하지 마십시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우리의 인내는 그냥 인내가 아닙니다. 즐거운 인내요. 희망찬 인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그에 합당한 열매와 상급을 허락해 주실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 번째로 우리는 의의 무기를 가져야 하는데요. 고후6:7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고후6: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앞서 언급해드렸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으로 받은 성도라는 직분을 감당하다보면, 넘어지거나 죄를 지을 기회가 생긴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넘어지거나 죄를 지을 기회가 생긴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보면, 일정 부분에 있어서는 사탄의 공격이 반드시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는 성도로서의 삶을 사는 동안 사탄의 영적인 공격으로부터 승리하기 위해 의의 무기를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방금 읽은 7절 말씀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그것은 바로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인 것이죠. 그리고 7절 말씀 후반부를 보시면, 이와 같은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원어에는 직접적으로 왼손과 오른손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리의 말씀을 왼손에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오른손에 가지고,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홉 가지의 반대 명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도로서의 직분으로 사명을 다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 쉽지 않고 참으로 외롭고 힘들고 어려운 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이 길을 걸어가야 하는데요. 사도 바울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8-10절까지의 말씀인데요. 이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아홉 가지의 반대 명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읽어드리죠.
[고후6:8-10]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육체를 따라 판단하는 이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우리가 이 땅에서 성도로써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1.
첫 번째로 8절 말씀에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욕된 인생처럼 보이겠죠.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보다 영광스러운 인생은 없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성도라는 그 이름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악한 이름일지 모르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보다 아름다운 이름이 없는 것이죠.
3.
세 번째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속이는 것 같이 여겨질지 모르죠.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참된 것은 없구요.
4.
네 번째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닌 무명한 자 같으나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이름을 다 아시기 우리는 유명한 자인 것입니다.
5.
또한 다섯 번째로 사도 바울은 늘 죽음의 위기 앞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 있는 자가 되었구요.
6.
여섯 번째로 사도 바울은 늘 옥에 갇히고, 징계를 받았지만 죽임을 당하지 않았죠.
7.
일곱 번째로 우리들은 세상적으로 볼 때에는 기뻐할 일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여지는 근심한 자 같으나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소유한 자이구요.
8.
여덟 번째로 세상적으로는 우리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자 같을지 모르지만,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자들이기에 세상 많은 사람들을 부요케 하는 자이구요.
9.
마지막 아홉 번째로 우리들은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하나님을 소유한 자이기에 모든 것을 가진 자가 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이름을 아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화목하게 하는 직분 즉 성도로서의 직분을 다하는 삶을 한번 살아가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참된 성도로서의 사명을 즐거운 인내, 희망찬 인내로써 잘 감당하셔서 하나님으로부터 칭찬 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환난 가난과 고난 수고로움 속에도 성도는 그 믿음을 지켰네
주를 섬기는 일에 자신을 다 드리며 진리의 말씀과 성령으로 그 길을 걸었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하시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자유케 되었네
우리는 무명하나 유명한 자요 죽음의 위기 속에도 참 생명 가졌고
근심하나 기뻐하며 가난하나 다른 이를 부요케하는 자로다 모든 것 가진 자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