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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95:1-11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를 즐거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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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제기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시95편 말씀입니다. 찬송가 79장의 배경이 된 말씀인데요. 찬송가 79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그 제목 아래를 보시면,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시95:3)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세계, 천지 만물을 지으신 크신 하나님이시죠. 따라서, 저는 오늘 알파교회라는 공동체의 이름으로 처음 드려지는, 이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마땅히 감사와 찬양을 드리기에 합당하신 그 크신 하나님과 관련하여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주 주일 설교 말씀에서 우리는 참된 성도로서의 삶과 관련하여 함께 말씀을 나누었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고,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참된 성도로서의 삶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 다르게 표현하자면, 우리가 하나님과 계속해서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 한 가지가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드리는 삶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요. 또한 온전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죠. 이를 통해서 세상 속에서 참된 성도로서의 삶을 계속해서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95편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참된 예배자로 서기 위해 어떠한 마음 가짐으로 예배에 참여해야 하는지 잘 가르쳐주고 있는데요. 따라서 저는 오늘 이와 같은 내용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시95편 말씀은 성전 앞에 모인 이스라엘 모든 회중들에게 선포된 말씀인데요. 앞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린 것과 같이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나온 자들이 어떠한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예배에 참여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시95:1 말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죠.
[시95: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방금 읽은 말씀에서 시편 저자는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즐거이 외치자”라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예배 가운데 나아올 때, 하나님을 찬양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나아와야 한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오늘 우리 알파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시기 위해 오실 때에, 하나님을 만난다는 기쁨과 설레임이 가득 넘쳐서 즐겁고 행복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오셨습니까? 조금 전 우리가 함께 살펴 보았던 시95:1 말씀이 바로 그와 같은 내용인 것이죠. 다른 이유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그분의 말씀을 듣는다는 기쁨과 즐거움과 사모하는 심령이 예배 가운데 나올 때 우리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왜 그렇습니까? 시107:9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우리가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에 즐거워하며, 하나님께서 주실 말씀에 대해서 기대하며 사모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예배를 통하여 우리에게 만족을 주시며,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 가운데 나아올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은혜에 대한 기대감과 즐거움으로 나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두 번째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은 2절 말씀에 나오는데요. 제가 읽어드리죠.
[시95: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두 번째로 우리가 예배 가운데 나아오며 가져야 할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한 마음 가지고 나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가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곳이 있는데요. 그 곳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 앞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방금 읽은 시편 95:2 말씀에 언급된 표현 중에 “그 앞에”라고 번역된 표현이 있죠. 이 말씀은 히브리어로 “파님”이라는 단어인데요.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얼굴”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배 가운데 나아올 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곳이 있는데, 그 곳이 바로, 하나님의 얼굴 앞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처럼 그 만큼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듯 만나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원래 하나님은 형체가 없으신 분이시죠. 영적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듯 만난다는 것은 온 땅에 충만하신 그 하나님의 임재 안에 깊숙히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예배 가운데 나아올 때, 그 예배 가운데 임재하고 계신 하나님 앞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그 임재 속에 깊숙히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가 시편100편 4절 말씀에 나오는데요.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시100: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방금 읽은 말씀에 의하면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그의 문은 성전 문을 의미하고, 그의 궁정은 성전 뜰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성전 문 안으로 들어가고, 성전 뜰 안으로 들어갈 때, 어떻게 하면서 들어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감사함으로 찬송함으로 들어간다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히브리어 원어 성경을 보면, “그의 문”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샤아르”라는 단어인데요. 이 단어는 어원적으로 “열리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전의 문을 열고,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릴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방금 우리가 함께 살펴보았던 시편100편, 이 감사의 시를 성전 안으로 들어가면서 불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도 예배 가운데 나아와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래야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전의 문이 열리듯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 또한 활짝 열리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예배 가운데 나아오실 때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나아오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께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처럼 예배 가운데 나아올 때, 즐거운 마음으로, 또한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그 임재 가운데 깊숙히 나아가야 할까요? 그 이유는 3절 말씀에 나오는데요.
[시95:3]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믿는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시며, 모든 신들보다 크시고 위대하신 왕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시고 얼마나 위대하신가 하면, 오늘 본문 4-5절까지의 말씀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과 같이
[시95:4-5] 4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5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땅의 깊은 곳이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다 하나님의 것이요. 바다도 다 하나님의 소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땅의 깊은 곳과 산들의 높은 곳, 그리고 바다란 표현은 온 세상 천지만물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는 그림 같은 문구인 것이죠. 땅의 깊은 곳과 산들의 높은 곳, 그리고 이 세상 모든 바다가 다 하나님의 그 손 안에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되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광대하시고 하나님의 그 위대하심을 상상하게 되고 그려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표현은 하나님의 그 크시고 위대하심을 상상하는 것, 그것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3절 후반부에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심을 나타내는 것까지 의미하고 있는데요. 이방인들의 이교 사상에 의하면, 이방인들은 ‘깊은 곳’은 몰렉이 통치하고, ‘산들의 높은 곳’은 바알이 통치하며, ‘바다’는 티아맛이 통치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4-5절까지의 말씀에 의하면
[시95:4-5] 4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5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땅의 깊은 곳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과 바다는 하나님의 것이고, 또한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영역은, 이 세상 그 어떤 신들보다, 더 크고 더 위대하신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 가운데 나아와 오늘 본문 6절 말씀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과 같이
[시95: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하나님 앞에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찬양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목자이신 하나님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예배 가운데 나아올 때, 즐거운 마음으로, 또한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깊숙히 나아가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이처럼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다른 그 누군가의 하나님이 아니시라 바로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7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시95:7]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중략)
방금 읽은 말씀에서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앞서 3-5절까지 말씀드렸던 것과 같이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라고 말씀드렸죠. 땅의 깊은 곳도 산들의 높은 곳도 바다도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하나님의 그 위대하심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죠. 하지만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시랍니다. 그러니까 나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것입니다.
구약 말씀을 보시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란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 각 개인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들으시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 각각 한 사람씩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원하신다는 것이죠.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그 크고 위대하심을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 각 개인들에게 나타내기 원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7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시95:7]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백성이며, 하나님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요 우리는 그의 양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반려동물을 키우시는 분들은 잘 이해가 되실 텐데요.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양 뿐만이 아니라 모든 반려동물은요. 그 동물을 키우는 주인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다 챙겨줘야 합니다. 저는 지금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데요. 강아지가 하는 것은 먹고 싸고 자는 것 밖에 없어요. 그러면 주인은 뭘 해야합니까? 먹는 것과 마시는 것 다 챙겨줘야 하죠. 간식도 챙겨줘야 하죠. 산책 시켜줘야 하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야 하죠. 배변한 것 치워줘야하죠. 때마다 목욕도 시켜줘야 하죠. 털 관리도 해야하죠. 해줄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을 단 한번만 일회적으로 챙겨주는 것이 아니죠. 그 동물이 죽을 때까지 책임지고 잘 챙겨줘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요 우리는 그의 양이라는 표현이 바로 그와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다 책임져 주시겠다는 의미이구요. 우리가 아프면 우리의 병도 고쳐주시겠다는 의미인 것이죠. 그러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의 모든 필요를 다 책임져주시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이 너무 감사하지 않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목자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올 때, 그러니까 예배 가운데 나아올 때, 즐거운 마음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나아와야 하는 것이죠.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해드릴 것이 이것 밖에 없고,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이것을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앞서 제가 반려동물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강아지가 주인에게 하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인이 반갑고 좋을 수가 없어요. 잠깐만 외출하고 돌아와도 그렇게 반가워하고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챙길 것이 많지만, 이 맛에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거든요. 마찬가지죠.
우리가 하나님께 해드릴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세상 천지 만물 모든 것들을 다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해드릴 것이 전혀 없어요. 여러분들이 만약 하나님께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드린다고 생각하시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하나님은 필요하신 것이 전혀 없으신 분이세요. 오히려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해주실 것이 너무 많으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으신데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만해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예배 가운데 나오면서 하나님을 만날 생각에 너무 즐겁고 셀레이는 것이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하게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원하세요. 이와 같이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워 하는 마음과 감사한 마음을 가지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그런데, 그와는 반대로 우리가 예배 가운데 나아오면서 가지고 나오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고자 하는 마음인데요. 오늘 본문 시편95편 말씀은 사실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1-7절까지, 예배의 부름에 대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구요. 두 번째 부분은 8-11절까지, 반역과 불순종에 대해 경고하는 부분으로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8절 말씀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메시지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시95:8]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너희가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계신데요. 므리바와 맛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하면,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했던 것이죠. 그래서 모세가 반석을 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갈증을 해소하게 한 장소가 바로 므리바와 맛사였습니다.
8절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했던 모습을 완악하다고 표현하고 계신데요. 완악하다는 표현은 성질이 억세게 고집스럽고 사납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완악하다고 평가하고 계신 구체적인 이유가 있는데요. 그 이유는 9절에 나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시95:9] 그 때에 너희 조상들이 내가 행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조사하였도다
그러니까 이들은 므리바와 맛사 사건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를 경험하고 보았던 것입니다. 출애굽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있는 고센 땅에는 재앙이 내리지 않고, 애굽 백성들이 있는 곳에만 재앙이 내리는 것을 경험하였고요. 그 뿐입니까?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것도 경험하였고요. 그 외에도 엄청난 기적들을 많이 경험했었죠. 그런데 지금까지 말씀드린 기적이 일회적인 기적이었다면, 매일 반복되었던 기적도 있었습니다.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셨고,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과 늘 함께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던 것을 보고도 어떻게 한 것입니까? 9절 후반부 내용을 보시면, 하나님을 시험하고 조사했다고 언급하고 있죠. 그런데 9절 말씀에서 ‘조사’라고 언급되어 있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바한’이라는 단어인데요. 이 단어 또한 시험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하나님을 시험하고 또 시험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수 많은 기적을 베푸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는데, 이들이 한 순간 마실 물이 없는 고난 앞에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상하실 수 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제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시험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이 상하셨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오늘 본문 10절 말씀을 보니까 마음이 상하신 정도가 아니더라구요. 하나님의 마음이 훨씬 심각하게 좋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정도로 심각하게 좋지 않으셨는가 하면요. 10절 말씀을 보시면,
[시95:10]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신데요. 근심이라는 단어를 원어로 찾아보니까, 그 단어는 히브리어로 “쿠트”라는 단어인데요. ‘혐오하다’ ‘몹시 싫어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였습니다. 또한 이 단어는 에스겔서 말씀에서도 기록되어 있었는데요. 그 본문 해석에서는 “미워하다”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를 어떻게 생각하신다는 것입니까? 혐오하실 정도로 몹시 싫어하고 미워하신다는 것이죠.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것은 심각하게 좋지 못한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것은 그 뿌리에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불신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죠. 그것은 곧 이 세상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불가능한 것이 없으신 하나님의 그 능력을 의심하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을 살다보면 마실 물이 없는 것과 같이 예상치 못한 고난과 환난을 만날 때도 있죠. 그런데, 마실 물이 없는 상황은 누가 해결해야 합니까? 내가 해결해야 하나요? 우리가 해결해야 합니까? 아니죠. 우리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해결해야 합니까? 목자이신 하나님이 해결하셔야죠. 양에게 마실 물이 없는 상황을 해결해야하는 것은 목자가 해결해야 하는 영역이고 목자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겠다는 것은 내가 너의 모든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동일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르시고 돌보시기 원하고 계시는데, 마실 물이 없는 문제 앞에서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하시기도 전에 문제가 발생하자 마자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부터 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마음이 상하실 수 밖에 없으신 것이죠. 그렇다면, 이와 같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하는 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11절 말씀을 보시면,
[시95:11]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식’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메누하’라는 단어인데, 휴식, 위안, 쉬는 장소에서 안식을 얻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인데요. 이처럼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하는 자들은 마음에 위안과 쉼을 얻을 수 없는 것이죠. 왜 그렇습니까? 물이 없는 문제 앞에서 그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원망하고 있으니 마음이 불안하고 두렵고 염려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을 믿으며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워하는 마음과 이미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실 하나님을 믿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 가운데 나오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에 위안과 안식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목자가 되시길 자처하고 계십니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따라서 추수감사주일같은 특별한 날에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매 주일마다 아니 매일 매일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운 마음과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안식 가운데 늘 평안하고 복된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