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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2:1-11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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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오늘 본문 말씀은 요일2:1-11까지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첫 번째 부분은 1-2절까지의 말씀으로 어제 요일1:5-10절까지 말씀의 부연 설명에 해당하고, 두 번째 부분은 3-11절까지의 말씀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와 계명의 지킴과 관련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이 두 부분의 말씀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 1-2절까지의 말씀은 앞서 언급해드렸던 것과 같이 어제 본문 요일1:5-10절까지 말씀의 부연 설명에 해당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요일2:1 말씀은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를 기록한 목적이 기록되어 있는데, 요일2:1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요일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방금 전 읽은 말씀에서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죠.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즉 요한일서를 기록한 목적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즉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지 않도록 도와줄 목적으로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요한은 계속해서 그 내용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무슨 의미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계속해서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죠. 성도들의 연약함에 대해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약 이처럼 불가피하게 죄를 짓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어제 본문 말씀 요일1:9 말씀과 같이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요일2:1 말씀에 의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말씀하고 있죠. 즉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대언자가 있으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가 화해할 수 있도록 조정자 역할을 감당해주시기 때문에 이처럼 죄사함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앞서 언급해드렸던 죄사함의 역사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2절 말씀에서 언급하고 있는데요. 요일2:2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요일2: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방금 읽은 말씀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라 언급하고 있는데, 화목제물이라 번역된 단어의 경우 헬라어 원어 성경을 보면 “힐라스모스”라는 단어로 되어 있는데, 이 단어의 의미는 “속죄”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화목제물”로 번역되기 보다는 “속죄제물”로 번역되는 것이 더 올바른 번역인 것이죠.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우리 죄를 위한 속죄제물이 되어주셨는데, 2절 후반부 말씀을 보게 되면, 예수님의 속죄 사역은 우리만 위할 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말씀하고 있죠.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은 몇몇 소수를 위한 속죄의 피흘리심만이 아니라 온 인류의 속죄를 위한 피흘리심인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두 번째로 3-11절까지의 말씀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계명의 지킴과 관련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는데요. 어제 설교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사귐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죠.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코이노니아를 해야했었는데, 쌍방 상호교류 방식으로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하나님과 사귐의 관계를 맺는 것을 좀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데, 요일 2:5 후반부를 보시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즉 하나님과의 사귐의 관계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죠. 6절 말씀은 또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데,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즉 우리는 하나님과의 사귐의 관계를 위해 하나님 안에서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사귀는 관계가 된다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잘 아는 자가 되겠죠.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을 안다고 할 때 사용하는 단어는 “야다”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야다”라는 단어가 특별하게 쓰여진 본문이 있는데, 그 본문은 창4:1 입니다. 제가 읽어드리죠.
[창4: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방금 읽은 말씀을 보시면 “안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개역개정 성경이 의역을 했기 때문인데, 방금 읽은 말씀에서 “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는 “동침하매”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를 알게 되매”가 직역하였을 경우의 번역인 것이죠. 그러므로 아담이 하와를 알게 되었을 때 가인을 낳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으니까 “야다”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안다”라는 의미가 가지고 있는 수준은 부부가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처럼 우리들이 하나님을 안다는 의미 또한 이처럼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냥 대충 아는 수준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삶을 살아 하나님에 대해 구체적으로 잘 아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살고 하나님을 잘 아는 자가 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사도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살고, 하나님을 부부가 함께 사는 것처럼 잘 알게 된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킬 수 밖에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요일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면 그의 계명을 지킬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요일2:3 말씀에서 “안다”는 의미로 사용된 헬라어 단어는 “기노스코”라는 단어인데, 히브리어의 “야다”라는 단어와 거의 흡사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제대로 안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4절 말씀도 부정적인 표현으로 동일하게 말씀하고 있는데,
[요일2: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라는 것이죠.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하면 어떤가요? 사랑하는 대상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십니까? 좋아하는 행동을 하십니까? 좋아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귐이 있고,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 안에 살며, 그로 인해 하나님을 잘 알게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죠.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계명을 지키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계명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죠. 7절 말씀을 보시면 새 계명과 옛 계명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두 가지 모두 동일한 것입니다. 옛 계명은 요13:34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이고, 새 계명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을 사도 요한이 다시 말씀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 사랑은 5절 말씀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요일2: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죠.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하나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웃 사랑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0절 말씀을 보시면,
[요일2: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라고 말씀하고 있죠. 우리 주변에 있는 이웃들에게 하나님 사랑을 나누고 베풀며 실천하는 것이 바로 이웃 사랑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앞서 1절 말씀에서 사도 요한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이 서신을 기록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사도 요한이 말씀하고 있는 죄는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것이 죄인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먼저는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가 되기 위해 우선은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하나님을 더욱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선은 성경 말씀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 알파교회는 새해 2월부터 온 교우들이 90일 성경통독을 통해 하나님을 함께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주일오전예배 후 점심 식사를 같이하고 나서 함께 성경공부를 하면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죠.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잘 알게 되면,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고,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면,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게 되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게 되면, 죄를 범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 가장 우선 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잘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더욱 알기에 힘쓰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복된 날 보내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