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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16:1-19 삶의 여러 문제 앞에서 일희일비하지 않고 평정심을 되찾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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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3주전부터 우리는 참된 성도로서의 삶을 사는 것에 관해 함께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직분이 있었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직분을 잘 감당하기 위해 우리가 먼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해야 했었고,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어야 했었죠.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예배 가운데 나아와야 했었고, 또한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그 임재 가운데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 우리들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직분, 그러니까 복음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될 때, 때로는 세상 속에서 힘든 일들을 당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그 세상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이 사명을 잘 감당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앞에서 참된 성도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해 나아간다 하더라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을 살게 되면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삶의 문제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시116편 말씀에도 그와 같은 내용들이 언급되어 있는데, 3절 말씀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116:3]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그러니까 오늘 시편의 저자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환난과 슬픔의 상황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또한 8절 말씀에서도 동일하게 언급하고 있는데,
[시116: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방금 전 읽은 8절 말씀에서는 ‘사망’과 ‘눈물’과 ‘넘어짐’이라는 표현이 나오죠. 그러므로 ‘사망’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이 시편의 저자가 목숨을 잃을 뻔한 위험을 겪었다는 의미이고, 또한 ‘눈물’이라는 표현은 이 시편의 저자가 힘들고 슬픈 일들을 겪었다는 의미이죠. 또 ‘넘어짐’이라는 표현은 이 시편의 저자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다거나, 또는 삶 속에서 실수를 저지르는 등과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가지 삶의 고난의 문제들을 겪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시편 116:15 말씀을 보시면, ‘그의 경건한 자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하씨드’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성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성경 여러 본문에서 ‘성도’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예전에 보던 개역한글 성경에도 ‘성도’라고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이 땅에서 참된 성도로서의 삶을 잘 살아간다 하더라도 오늘 시편의 저자가 겪었던 것과 같이 ‘사망’과 ‘눈물’과 ‘넘어짐’과 같은 문제들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우리 알파교회 성도님들도 앞서 언급해드린 것과 같이 ‘사망’과 ‘눈물’과 ‘넘어짐’과 같은 삶의 여러 문제들을 많이 겪으신 줄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 또한 지금까지 삶을 살아오는 나날 동안 어떠한 삶의 문제들을 겪어왔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저도 그동안 삶을 살면서 여러가지 힘든 일들을 꽤 많이 겪어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8절 말씀에 사망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저도 죽을뻔한 경험을 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요즘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 예전에는 난방을 위해 연탄 보일러를 거의 대부분 사용했었죠. 한번은 이런 적이 있었는데, 어린 시절 제 기억으로 그날은 어머니께서 기도원에 가셨는지, 계시지 않고, 아버지와 저만 단둘이 집에서 잠을 잤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다락방 같은 윗방에서 주무시고, 저는 저 혼자 아랫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따라 새벽에 아버지가 저를 갑자기 부르시더니 목이 마르시다고 물을 떠오라고 저를 깨우셨습니다. 생전 그렇게 저를 깨우시는 분이 아니신데, 이상하게 저를 깨우시니 제가 일어났었죠. 그런데, 저는 일어서자마자 바로 쓰러졌습니다. 연탄 가스에 중독되서 쓰러진 것입니다. 만약에 아버지께서 목이 말라 새벽에 일어나 저를 깨우시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도 그 날 하늘 나라에 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금도 하나님께서 저희 아버지를 깨우셨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경험이 있는데요. 저는 고향이 부산이라 친구들과 바닷가에 놀러 많이 다녔습니다. 한 번은 친구들과 성게랑 불가사리를 잡으러 방파제를 갔었는데, 여러분 보통 방파제를 가보시면 테트라포드라고 삼각대 모양의 콘크리트로 쌓여져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는 그 테트라포드를 뛰어넘다가 이끼에 미끄러져서 그만 바닷물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엄청 깊은 바닷물 속으로 빠져 버린 것이죠. 저는 그 짧은 순간 생각했습니다. ‘난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한 것이죠. 왜냐하면 제가 수영을 아예하지 못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제가 살아서 이렇게 말씀을 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어떻게 살았을까요? 옆에서 낚시를 하시던 아저씨가 낚시대로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만약 낚시하던 아저씨가 계시지 않았다면, 아마도 저는 이 세상에 없었겠죠.
그 외에도 학교 진학에 실패하여 눈물 흘리며 슬퍼했던 일들, 또한 자녀들의 심각한 질병으로 인해 여러 병원들을 전전하며 하나님께 우리 아이들 고쳐달라고 눈물로 기도했던 일들, 때로는 여러 사람들의 모함으로 인해 겪었던 억울한 일들 등 오랜만에 생각해보니 참 다양하게,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들은 저와는 비교도 안되게 훨씬 더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을 겪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이와 같은 고난의 문제들을 겪다보면, 우리의 감정은 널뛰기를 하듯이 요동치게 되죠. 그러므로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들은 평안하지 못하고 평정심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을 읽다보면,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평정심을 찾을 수 없는 풍랑 가운데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평안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사망’과 ‘눈물’과 ‘넘어짐’의 고난을 겪을 때, 어떻게 하면 그 고난을 겪을 때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마음이 평안하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저는 오늘 이 부분에 관하여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사실 특별한 방법은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미 다 알고 계세요. 우리는 이와 같은 고난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사실 이것이 최고의 방법이며, 이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가진 고난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116:10]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
그러니까 오늘 시편 116편의 말씀의 저자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자신이 크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그러니까 마음이 무너지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방금 전 읽어드린 10절 말씀의 내용은, 새번역 성경의 번역을 보시면 그 내용이 좀 더 쉽게 이해가 잘 되는데요.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시116:10, 새번역]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고통스러우냐?" 하고 생각할 때에도, 나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해가 잘 되시고 마음에 딱 와닿으시죠? 여러분들 힘든 일들을 겪으실 때, 이와 같이 고백하지 않으십니까? “아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울까?” 이처럼 고백하실 때가 많이 있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 시편의 저자는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었고,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믿음도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가 6절 말씀에 나오는데, 제가 읽어드리죠.
[시116:6]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그러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순진한 자를 지키시는 분이시고, 우리들이 어려울 때에 우리들을 구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인 것이죠. 그런데 방금 읽은 말씀을 보시면 ‘순진한 자’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단어의 의미는 아직 고난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경험이 부족하고,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고난의 문제 앞에서 두려움에 떨며 평정심을 찾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처럼 약한 자들을 지키시고 구원하시고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우리들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는 반대로 우리들은 사람들을 믿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11절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116:11] 내가 놀라서 이르기를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
방금 읽은 이 말씀은 어떤 의미냐하면, 새번역 성경의 번역을 보시면 이해하시기가 좀 더 쉬운데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시116:11, 새번역] 나는 한 때, 몹시 두려워,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 하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의지하거나 사람들에게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난을 겪게 될 때, 대부분의 경우는 우리 주변 사람들을 통해 겪게 되죠.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이처럼 우리들은 우리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난을 겪게 되었는데, 내가 가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가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하며 우리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얻고자 하는 습관 같은 것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대개의 경우에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려다보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것 같은 사람들에게 큰 기대를 걸게 되죠. 그런데 여러분들도 경험해보셨겠지만, 어떻던가요? 기대했던 그 사람들이 도와주시던가요? 그렇지 않죠? 왜 그럴까요? 이유가 있는데요. 내가 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고자 기대하는 것의 크기와 그 사람이 나의 문제에 대해 공감하는 마음의 크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 자신의 문제에 대해 느끼는 고통의 크기가 100이라고 한다면 상대방이 나의 문제에 대하여 공감하며 느끼는 크기는 절대로 나처럼 100이 될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만 공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본래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이기적이지 않습니까? 자신의 문제만 크게 느낍니다.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의지하고 기대하게 되면, 돌아오는 것은 실망감 밖에 없죠. 그 사람들이 나빠서가 그런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애초에 신뢰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 아버지 하나님만이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시죠.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기대해야할 대상이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본문 5절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116:5]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가 아파하고 슬퍼하고 힘들어가고 있는 그 문제에 대해서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더 공감하시고, 함께 아파하시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들이 가진 그 문제를 자기 일처럼 그 누구보다 깊이 개입하셔서 해결해주시고 싶어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가진 문제에 관하여 제대로 공감하지도 못하고, 별 관심도 없는 인간들을 의지하고, 그들에게 기대할 것이 아니라,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우리의 문제가 관심이 많으시고, 우리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셔서 해결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대하며, 그 분을 믿어야 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며, 그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데,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을 보시면,
[시116:3]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그러니까 이처럼 힘든 고난의 문제를 만났을 때 오늘 시편 말씀의 저자가 한 행동이 있는데요. 4절 말씀을 보시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116:4]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그러니까 방금 읽은 말씀에 의하면 시편의 저자는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자신의 영혼을 건져달라고 기도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러므로 우리들도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빌2:9-10까지의 말씀을 보시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는데요. 빌2:9-10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2:9-10]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방금 읽은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극히 높이셔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셨는데,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모든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굴복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에 놀라운 능력과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기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 이름으로 선포하며 악한 권세를 대적하며 기도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들이 겪는 삶의 문제들을 보게 되면, 사탄의 세력들이 개입하여 발생하는 경우들이 정말 많죠.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탄의 세력을 대적하며 기도해야 하는데,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사도행전에 나오는 모든 치유와 축귀의 역사가 어떻게 일어난 줄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선포될 때 일어났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에 능력이 있기 때문이고, 그 이름이 선포되는 곳에서 악한 영들이 물러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하며 악한 영을 대적하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나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 스스로가 나의 영혼에게 믿음의 선포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음으로 선포해야 하는가하면, 7절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116:7]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방금 읽은 말씀에 의하면 시편 기자는 자기 자신의 영혼에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다시 읽어드리면,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선포하고 있는데, 새번역 성경의 번역이 여러분들이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번역되어 있기 때문에 새번역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시116:7, 새번역] 내 영혼아, 주님이 너를 너그럽게 대해 주셨으니 너는 마음을 편히 가져라.
그러니까 내 영혼아, 주님이 너를 너그럽게 대해 주셨으니까 저는 마음을 편히 가져도 된다고 안심의 말로 위로하며 선포하고 있는 것이죠. 7절 말씀에 “후대하심”이라고, 또한 새번역에서 “너그럽게”로 번역된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가말’이라는 단어인데, 혜택, 보답, 보상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며 믿음으로 기도한 이후에 내 영혼에서 선포하는데, 무엇을 선포하는가 하면, “내 영혼아 너는 마음을 편하게 가져라. 주님이 너의 기도에 보상해주실 것이다.”라고 선포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고난의 상황 속에서 요동치고 있는 나의 영혼을 안심시키며, 나의 영혼이 삶의 여러 문제들 앞에서 일희일비하지 않고 평정심을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하며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내 영혼에게 믿음으로 격려하며 선포하게 될 때, 우리의 영혼은 거친 풍랑이 이는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사망과 눈물과 넘어짐으로 인해 힘든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으십니까? 만약에 그러시다면, 오늘 시편 말씀의 저자와 같이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고통스러우냐”하고 생각하게 되실 때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으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절대로 사람을 의지하지 마시고, 여러분들이 힘들어하는 그 문제에 함께 마음 아파하며 공감하시고 직접 개입하셔서 긍휼을 베풀고자 하시는 그 하나님의 의지하고, 기대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기도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믿음으로 선포하여, 악한 대적 사탄 마귀와의 영적 전쟁에서 능히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처럼,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실 주님을 믿으며, “내 영혼아 너는 마음을 편하게 가져라. 주님이 너의 기도에 보상해주실 것이다.”라고 선포하며, 삶의 어떠한 문제 앞에서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평정심을 되찾으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