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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4:19-37 온 세상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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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할렐루야 오늘 이 새벽에 알파교회 새벽기도회에 참여하시고 또한 온라인으로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평강이 가득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느부갓네살 왕의 두 번째 꿈에 대한 해석에 관한 내용인데요. 오늘 본문 19절 말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단4:19a]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이 한동안 놀라며 마음으로 번민하는지라
다니엘이 왜 번민했겠습니까?
꿈의 내용이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인 것이죠. 그러면서 다니엘은 20절 말씀부터 왕의 꿈을 해석하기 시작하는데요. 느부갓네살 왕은 두 개의 환상을 보았었죠. 그래서 다니엘은 두 개의 환상에 대해 각각 해석합니다. 먼저 첫 번째 환상의 해석은 22절에 나오는데요. 제가 22절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단4:22]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이는 왕이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시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심이니이다
방금 읽은 말씀과 같이 느부갓네살의 첫 번째 환상에서는 땅의 중앙에 한 거대한 나무가 있었죠. 다니엘의 해석에 의하면, 그 나무는 바로 느부갓네살 왕이었습니다. 그 나무는 높이가 하늘에 닿고, 땅 끝에서도 보일 정도 였다고 하는데요. 그 만큼 느부갓네살 왕의 권세가 땅 끝까지 이를 정도로 대단한 권세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두 번째 환상의 해석에 관하여 24절 말씀부터 시작하는데요. 24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단4:24] 왕이여 그 해석은 이러하니이다 곧 지극히 높으신 이가 명령하신 것이 내 주 왕에게 미칠 것이라
앞서 두 번째 환상에 의하면 하늘에서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내려와서 소리 지르며 외쳤는데, 그것이 바로 지극히 높으신 이의 명령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5절부터 두 번째 환상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는데요. 25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단4:25]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두 번째 환상에 의하면 첫 번째 환상에 나왔던 그 나무가 베임을 당하죠. 그리고 나서 그루터기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쇠줄과 놋줄로 동이고 들풀 가운데에 버려두게 되는데요. 이처럼 느부갓네살 왕은 사람들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이슬에 젖으며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게 될 것이라는 것이죠. 그 때에 17절 말씀과 같이 지극히 높이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실 것이며, 하나님 주권대로 그 권세를 나누어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26절 말씀을 보시면, 다니엘은 나무 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두신 이유에 대해 해석하는데요. 26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단4:26] 또 그들이 그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방금 읽은 말씀에서 그루터기를 남겨 둔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기간이 바로 “일곱 때”인 것이죠. 그 일곱 때가 지난 이후에 느부갓네살 왕의 왕권이 복권되게 될 것이라는 해석인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28절 말씀을 보시면, 다니엘에 해석한데로 이 모든 일들이 다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게 되죠. 29절 말씀을 보시면, 12달이 지난 후에 느부갓네살 왕이 왕궁 지붕을 거닐고 있었는데, 그 때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30절 말씀인데요.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단4:30]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느부갓네살 왕은 이 큰 바벨론은 자신의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였고, 그것을 자신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위엄과 영광을 드러낸 것이라고 과시하고 있죠. 바로 그 때, 이 말이 아직도 느부갓네살 왕의 입에 있을 때 하늘에서부터 소리가 내려오는데요.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말씀하고 있죠. 그러면서 느부갓네살 왕은 두 번째 환상과 같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라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자라게 되죠. 그 후 34절 말씀을 보시면, 기한이 차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드디어 일곱 때가 지나 느부갓네살의 총명이 다시 돌아오게 되고, 그는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그에게 찬양과 경배를 드리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 말씀의 줄거리였는데요.

온 세상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라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느부갓네살 왕은 두 번에 걸쳐 환상을 보게 되었죠.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게 되면, 첫 번째 환상과 두 번째 환상을 구분짓게 되는 중요한 사건 한 가지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 환상 이후 두 번째 환상의 내용이 발생하도록 원인을 제공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앞서 제가 말씀드렸던 것과 같이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꿈에 관하여 해석한 이후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발생하게 된 일이었죠. 그 때 느부갓네살 왕이 왕궁 지붕을 거닐면서 했던 말이 문제가 되었던 것인데, 30절 말씀을 보시면, 느부갓네살 왕이 무엇이라 말했었습니까?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감고 이것으로 내 위엄과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라고 말했었는데요. 지금 방금 제가 말씀드린 내용에서 “내가”라는 표현은 총3회 나오는데, 그러니까 느부갓네살 왕의 교만함이 첫 번째 환상 이후 두 번째 환상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느부갓네살 왕의 교만함이 문제였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교만함은 하나님 앞에서 엄청나게 악한 죄악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만함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의 영광으로 도둑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방금 느부갓네살도 바벨론을 누가 건설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자신이 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거대한 바벨론 도성이 누구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것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통해 누구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느부갓네살 자신의 위엄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벨론은 누가 건설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건설하도록 허락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죠. 바벨론 도성은 누구의 것입니까? 바벨론 도성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의 것이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누구의 영광이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까? 오직 이 세상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 모든 권세들의 주권자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죄악들은 다 악하지만, 저에게 그 중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교만을 꼽고 싶습니다. 이유가 있는데요. 이 세상이 존재하기도 전부터 최초로 발생했던 죄악이 바로 교만이었기 때문입니다. 루시퍼가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했던 범죄함이 바로 교만이었던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교만은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 흉악한 죄악입니다. 사탄의 본성 중의 본성인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예수님의 본성은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높은 곳으로 계속 오르려고 하시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낮고 낮은 곳으로 임하셨던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존재도 예수님보다 낮아진 존재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낮아지시기 위해 처음 시작하셨던 공간은 천국이었죠. 천국이 예수님께서 낮아지시기 위해 결정하셨던 시작지점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낮고 낮은 이 땅으로 내려오신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그냥 낮고 낮은 땅으로 임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세례를 받으신 곳은 여리고 근처 요단강 세례터인데요. 이 지역은 해수면보다 무려 250m나 낮은 곳인데, 전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땅에 해당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가장 낮고 낮은 땅에서 상징적으로 세례를 받으시고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죠. 그러니까 낮아진다는 것이 바로 이거야라고 마치 우리에게 말씀하시듯이 겸손하게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절대로 교만해서는 안되고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우리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들에 통로였을 뿐인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항상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들이 겸손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쓰시고자 하신다면 고쳐서 쓰십니다. 교만한 자를 능히 낮추셔서 겸손케 하신 이후에 사용하시는 것이죠. 오늘 본문 37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단4:37]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방금 읽어드린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교만하게 행하였던 느부갓네살 왕을 능히 낮추신 이후에 그의 왕위를 다시 회복시켜주신 것이죠. 따라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교만하면 우리를 능히 낮추신 이후에야 사용하신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처음부터 교만하지 말고 늘 겸손하게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느부갓네살 왕이 교만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았단 것을 늘 기억하고, 예수님처럼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하게 쓰임 받으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