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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3:1-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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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할렐루야 오늘 이 새벽에 알파교회 새벽기도회에 참여하시고 또한 온라인으로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평강이 가득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너무 유명한 말씀이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표현이 기록되어 있는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줄거리를 대략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오늘 본문 단3:1 말씀을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단3:1]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높이는 육십 규빗이요 너비는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지방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방금 전 언급해드린 것처럼 느부갓네살 왕은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는데요. 그 높이는 육십 규빗이요, 너비는 여섯 규빗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지금 단위로 환산해서 말씀드리자면, 높이가 대략 27미터, 너비가 대략 2.7미터에 해당합니다. 그것은 바벨론 지방의 두라 평지에 세웠다고 하는데요.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의 절대 권력을 더욱 과시하기 위해 2절 말씀을 보시면,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들을 모조리 소집하여 자신이 세운 금 신상의 낙성식에 참여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5절 말씀을 보시면,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을 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6절 말씀을 보시면,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엄명을 내린 것이죠. 그러자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자들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려 절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8절 말씀을 보시면,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유다 사람들을 참소한 것인데, 유다 사람 몇 사람이 왕이 세운 금 신상에 절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절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다니엘의 세 친구였는데요. 오늘 본문 12절 말씀에서는 그 동안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로 기록되어 있던 것과는 달리 바벨론식 이름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느부갓네살 왕은 노하고 분노하여 이들을 끌어오라 말하며 심문 하게 되는데요. 만일 절을 하지 아니하면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라고 세 친구들을 협박하고 있죠. 그 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합니다. 자신들은 이 일에 대해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 17절 말씀을 보시면,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고, 18절 말씀에서 그 유명한 말을 남기죠.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남 유다가 멸망하기 전, 예루살렘에는 솔로몬이 건축했던 성전이 있었고, 유다 백성들은 비록 하나님 보시기에 타락하긴 하였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당연한 문화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는 어떻습니까? 유다는 멸망했고,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은 무너졌으며, 이들은 현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상태가 된 것이죠. 그러므로 현재 이들에게는 과거 유다에 살 때 당연하게 했었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닌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여러가지 것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신앙적인 부분들일 것입니다. 하나님 믿고 섬기는 것이 당연한 문화가 아니라, 바벨론의 신을 믿고 섬기는 것이 당연하고 일상적인 문화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열악한 포로 생활 속에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어떻게하면 이 척박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며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1장부터 곧 바로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요.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이 문제를 잘 헤쳐 나갔는데, 갑자기 느닷없이 찾아온 왕의 꿈에 대한 문제가 있었지만, 이것 또한 이들은 함께 기도하면서 이 위기를 잘 극복해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다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죠.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 절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 동안 이들은 이방의 것들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것들을 선택했는데,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이 위기를 잘 극복해 나가지 않았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도 이들은 당연히 금 신상 앞에서 절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느닷없이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이들을 참소한 것입니다. 이들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은 것을 보고 고자질해 버린 것이죠. 이와 같은 참소는 사탄들이 주로 우리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계12:10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계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이처럼 사탄은 끊임 없이 우리들을 넘어뜨리려고  참소하고 있는데요. 그 말인 즉슨, 우리들도 언제든지 사탄에게 참소를 당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참소는 너무 가혹했습니다.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을 계속해서 묵상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갈대아 사람들이 참소한 것처럼 나와 있고, 사탄의 세력들이 참소를 하고 있지만, 그 안에 진짜 본질적인 것은 그들의 참소 때문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허락하신 시험 같이 느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마음 속에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 나 믿니? 너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들어가게 될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 나 믿니? 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단서를 붙인 것입니까? 절하지 않으면, 고난을 당하게 때문인 것이죠. 아니 고난이 아니죠. 죽임을 당하게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여러분들이라면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하지 않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사실 지금 현재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도 어쩌면 다니엘의 세 친구가 맞닥들인 상황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너무 당연하지 않는 상황이며,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거나 조롱을 받을 수도 있는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포기해야 할 것들도 너무 많이 있죠. 그런데, 이와같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해야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들이 하나님을 선택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아닌지 이 세상 사람들은 알지는 못하지만 여러분들은 알고 계시고, 또한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현재 어떠한 신앙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너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들어가게 될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 나 믿니? 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다니엘의 세 친구였던,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 이 세 사람은 “네 하나님 믿어요”라고 답변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7절 말씀이죠.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이들이 이와 같은 믿음으로 나아간 것이죠. 이들이 이와 같은 믿음으로 나갔던 이유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1장부터 지금까지 오면서, 이들은 경험했었죠. 자신들이 위기를 당했을 때, 하나님께로 뜻을 정하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하나님께서 풀무불에서도 건져내어 주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그동안 이들의 믿음은 더욱 성장해 있었습니다. 18절 말씀을 보시면, 제가 읽어드리죠.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지금 이들은 무엇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건져내시지 않으셔도 절대로 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들의 이 믿음은 하나님을 향하여 너무 대단한 믿음인데요. 이들이 고백한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풀무불에서 건져내지 않으셔도 라는 의미인데, 이 의미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풀무불에서 건져내실 능력이 없기 때문이란 의미는 아닙니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100% 완전히 선하신 하나님이시기에 혹여나 건져내시지 않으신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깨닫지 못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의도가 반드시 있으실 것이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하나님을 섬기다가 풀무불에 던져져서 혹여나 불에 타 죽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믿다가 순교하는 것이 낫다는 믿음의 고백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들으시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들도 이들의 이와 같은 믿음을 배우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 내가 바라고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이들의 이 믿음과 순종은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앞서 언급해드렸던 것과 같이 다니엘서 1장부터 지금까지 오는 동안 하나님께로 뜻을 정하였을 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였던 것들이 쌓여서 지금과 같은 믿음으로 빛을 발하게 된 것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게 된 자들은 아무도 없는 것이죠. 그러므로 이와 같은 믿음으로 자라기 위해 끊임 없는 영적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도 이처럼 훈련 받아 우리 모두 다니엘과 그 세 친구와 같은 믿음을 소유한 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믿니?”라고 물어보실 때, “주님 그렇게 하지 아니하셔도 믿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그와 같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