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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9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라

영상설교

음성설교

줄거리

오늘 본문 말씀은 단11장의 말씀인데요. 오늘 말씀은 바사, 그러니까 페르시아 이후 당시 세계의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질지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전에도 느부갓네살 왕의 꿈과 다니엘의 환상으로 앞으로 펼쳐질 역사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었었죠. 오늘 본문 말씀은 그 내용이 좀 더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는데요. 단11:1 말씀을 보시면, 메대 사람 다리오 원년이라는 시간적 정보가 나오죠. 그렇기 때문에 단11:2 부터 나오는 내용은 이미 멸망한 바벨론의 역사는 생략되고, 지금 현재 시대에 해당하는 메대의 시대 이후 바사의 역사부터 상세하게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2절 말씀은 바사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요. 네 명의 왕이 일어날 것을 언급하고 있죠. 특별히 넷째 왕은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충동하여 헬라 왕국을 칠 것이며 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들은 넷째 왕을 에스더의 남편이었던 아하수에로 왕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세계사에서는 아하수에로 왕을 크세르크세스 1세로 부르는데요. 그는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 당시 헬라 제국이었던 그리스와 전쟁을 치뤘었죠.
그리고 난 후 3절 말씀을 보시면, 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라 말씀하고 있는데요. 한 능력 있는 왕은 여러분들도 짐작하시다시피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을 의미합니다. 4절 말씀을 보시면, 그가 강성할 때에 그의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그가 한창 잘 나갈 당시, 후계자도 지명하지 못한 채 서른셋의 나이로 죽었기 때문에 이처럼 나라가 나뉘게 된 것입니다. 4절 말씀 중반부를 보시면, 그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그의 부하 장수들에 의해 알렉산더의 이복동생과 아들이 암살 당하게 되어, 그의 제국이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로 넘어가게 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따라서 지난번 설교 때 언급해드렸던 것과 같이 혼란스러운 후계자 전쟁 끝에 알렉산더의 부하 장수들이 대제국을 나누어 통치하기로 합의하게 되죠. 그 결과 지금 여러분들이 지도에서 보고 계시는 것처럼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지역을 통치한 카산드로스, 발칸반도 동부 지역과 소아시아 지역을 통치한 리시마코스, 바벨론과 그 동쪽 지역을 포함하는 시리아 지역을 통치한 셀레우코스, 이집트와 북아프리카 지역을 통치한 프톨레마이오스 이렇게 네 왕국으로 분할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5절 말씀이 시작되는데요. 남방의 왕이라는 표현이 나오죠. 이 나라는 앞서 언급해드린 네 나라 가운데 이집트와 북아프리카 지역을 통치한 프톨레마이오스를 의미합니다. 프톨레미 왕조라고도 부르죠. 그리고 또한 5절 말씀에서 그 군주들 중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의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라고 언급하고 있죠. 이 나라는 다니엘서 다른 본문에서 북방 왕이라고 언급되는데요. 이 나라는 앞서 언급해드린 네 나라 가운데 바벨론과 그 동쪽 지역을 포함하는 시리아 지역을 통치한 셀레우코스를 의미하구요. 셀류코스 왕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5-19절까지 말씀을 보시면, 남방 왕 프톨레미 왕조와 북방 왕 셀류코스 왕조 이 두 왕조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는데요. 6절 말씀 보시면, 이 두 왕조는 서로 화친하기도 하구요. 또한 서로 전쟁하기도 하구요. 또 17절 말씀을 보시면 다시 화친기도 하는 등 서로 간의 이해 관계에 따라 변화되는 관계를 자세히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라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앞서 말씀을 시작할 때 언급해드렸던 것과 같이 바사, 그러니까 페르시아 시대부터 알렉산더 이후 북방 왕 셀류코스 왕조와 남방 왕 프톨레미 왕조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라들의 역사를 예언의 형식으로 전달하고 있는데요. 다니엘이 살고 있었던 그 당시에는 예언이었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 바라볼 때에는 역사적 사실인 것이죠. 그러니까 다니엘이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신대로 예언하였던 이 내용은 실제 역사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 모든 역사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가운데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전 세계를 통치하였던 바사의 경우 당시에는 엄청 강하게 보였지만, 그 시대도 곧 지나가고 알렉산더의 시대가 왔죠. 그러나 그 시대 또한 금방 지나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알렉산더 대왕이 갑작스러운 병으로 인해 33세의 나이로 요절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강력해 보이던 헬라 제국은 그의 죽음과 더불어 네 조각으로 깨어지고 말았고 결국 영원한 것은 없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세상에 영원한 나라는 없습니다. 영원한 나라는 오직 하나님 나라 밖에 없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영원한 권세도 없고, 오직 하나님의 권세만이 영원할 뿐인 것입니다. 또한 3절 제일 마지막 부분을 보시면, 알렉산더 대왕이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라 말씀하고 있는데요. 바로 다음 절인 4절 말씀에서 뭐라고 말씀하고 있냐하면 그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라고 말씀하고 있죠. 무슨 의미입니까? 제 아무리 강하고 힘이 있어 이 세상에 살면서 자기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하더라도 결정적일 때에는 어떻다는 것입니까?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자기마음대로 되지 않을까요? 나라도 영원하지 않고, 권력도 영원하지 않지만, 우리의 생명도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죠.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이 세상에는 하나님 외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추구해야 할 것 한 가지가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것을 추구하며 이 땅에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의학이 많이 발달되어서 우리의 수명은 길면 백 살까지 살 수 있다고 하죠. 100년이라는 시간은 어쩌면 굉장히 긴 시간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영원이라는 시간과 비교해보자면, 100년이라는 시간은 찰나와도 같은 시간인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날 동안 짧은 이 세상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삶을 대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한 번 이상 씩은 들어보신 이야기일텐데, 짐 엘리엇이라는 에콰도르에서 순교하신 선교사님의 이야기에 관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 분의 일생을 다룬 전능자의 그늘이라는 책이 굉장히 유명하죠.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이 분의 일생을 잠시 말씀드리자면, 그는 미전도 종족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한 비전이 있었는데, 남미에서 가장 난폭하고 잔인한 부족으로 알려진 에콰도르 정글의 아우카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하고 친구 네 명과 함께 에콰도르로 들어가게 됩니다. 2년 동안 현지에 있으면서 그 나라 말과 풍습 모든 것을 배우고 처음으로 아우카 부족을 만나기 위해 정글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요. 아우카 부족들을 처음 만난 그 날 아우카 부족 사람들에게 화살과 창에 찔려 처참하게 순교하게 된 것입니다. 그 때 짐 엘리엇의 나이는 불과 28세였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이었고, ‘이런 낭비가 어디 있는가?”라는 비난적인 기사까지도 실렸다고 합니다. 그 때 짐 엘리엇에게는 아내가 있었는데요. 그 아내가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낭비라니요. 남편의 죽음은 절대로 낭비가 아닙니다. 그는 온 생애를 바로 이 시간을 위해서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책임을 다하고 죽은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하죠. 왜 그럴까요? 짐 엘리엇은 대학생 때 이와 같은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할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자는 바보가 아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그는 비록 순교하였지만, 영원한 것을 위해 살았고, 영원한 것을 얻었기에 그의 아내의 말과 같이 자기 책임을 다하고 죽은 행복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다니엘도 짐 엘리엇과 같은 사람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던 주변 모든 사람들이 영원하지 않은 세상의 권력들을 추구하는 곳에서 그는 영원한 것을 추구했던 자였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인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 진짜 짧습니다. 진짜 금방 갑니다. 여러분, 나중에 훗날 주님 앞에 설 때, 주님께서 “너 이 땅에서 뭐하다 왔니”라고 물으시면 여러분들 뭐라고 답하시겠어요? 몇일 전 설교 때에도 언급해드렸었는데, 노아의 때에 노아의 방주에 타지 못했던 자들이 왜 타지 못했다고 말씀드렸습니까?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그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하나님 나라의 일과는 전혀 상관 없이 그냥 먹고 마시고 일상적인 삶만을 살았기 때문인 것이죠. 영원한 것을 얻고자 하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할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자가 되기 원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오늘 하루도 영원한 것을 얻고자 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닫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으로 승리하는 날 보내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