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개
home
목회 철학
home

전1:1-18 올람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라

영상설교

음성설교

설교문

지난 주까지 우리는 다니엘서 말씀을 함께 나누었었는데요. 오늘부터 전도서 말씀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전도서1장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은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는데요.
[전1: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전도서의 저자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죠. 그런데 방금 읽은 말씀에 의하면, 이 말씀을 전도자의 말씀이라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전도자”라는 의미는 우리말로 ‘도를 전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코헬렛’이라는 단어인데요. 이 단어의 의미는 ‘불러 모으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자의 원래 의미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모임에서 발언을 하는 사람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2절 말씀을 보시면, 전도자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방금 읽은 말씀에 의하면 헛되다는 표현이 무려 5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헛되다’로 번역된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헛되다’가 아닙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헤벨’이라는 단어인데요. ‘숨’,’입김’,’안개’,’이슬’ 등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처럼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의미로부터 “헛되다”는 2차적 의미를 도출해낸 것이죠. 그러므로 “헛되다”는 것은 잠깐 있다가 사라지니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헛되다”는 것이고, 따라서 이 “헛되다”는 의미는 영원하지 못함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도자는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헛되다고 고백했던 것일까요? 3절 말씀을 보시면,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요.
[전1: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라고 전도자가 고백하고 있죠. “유익한가”로 번역된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이트론’이라는 단어인데요.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남다, 남겨지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3절 말씀을 원어적 의미를 담아서 다시 새롭게 해석해 드리면,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를 통해 인간이 이 땅에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런데, 무언가 남길 것이 있다는 것입니까? 없다는 것입니까? 없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헛되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 땅에서 제 아무리 엄청나게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창조 세계의 패턴을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은 영원하기 때문인 것이죠. 그렇다면 인간이 만든 것은 어떻습니까? 유한하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앞서 ‘헛되다’의 히브리어 원뜻이 무엇이라고 말씀드렸습니까? 헤벨, 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릴 것들이라고 말씀드렸죠. 이처럼 인간이 만든 것은 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리고 영원하지 못하기에 “헛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4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죠.
[전1: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유한하기에 한 세대는 가고 새로운 세대가 다시 오죠. 하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땅은 어떻습니까? 영원하죠. 따라서 전도자는 이 “헛되다”는 의미와 대비되는 표현으로 “영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4절 말씀에서 ‘영원’이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올람’이라는 단어인데요. 이 단어는 어원적으로 ‘가려진 것, 숨겨진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아주 먼 옛날, 태초를 의미합니다. 우리들은 보통 ‘영원’이라는 의미를 떠올릴 때,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떠올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영원이라는 의미를 생각할 때, 미래를 떠올리기 보다는 과거를 떠올렸던 것이죠. 따라서 “땅은 영원히 있도다”라는 이 표현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동안 땅이 영원히 있을 것이라는 의미이기 보다는 태초 천지가 창조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아주 오랜 시간 땅이 변하지 않고 존재해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까?
[전1:5]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해는 뜨고 해는 지죠. 그리고 해는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서 다시 뜨고 다시 집니다. 언제부터요.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영원토록 뜨고 질 것이라는 것이죠. 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까?
[전1: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또 어떻습니까?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불다가 동서남북 이리 저리 돌며 불죠. 태초부터 지금까지 불어왔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영원토록 불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뿐입니까? 7절 말씀을 보시면,
[전1: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는데, 아무리 흘러도 절대로 바다를 다 채우지 못하죠. 왜 그렇습니까? 바닷물이 증발하여 구름을 이루고 비가 내려 강물이 흐르고 바다를 채우는 이 모든 과정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토록 계속 지속될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는 영원하죠.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는 히브리어로 ‘올람’에 속한 것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인간은 어떻습니까? 영원하지 못하죠. 그러므로 ‘인간’은 히브리어로 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리는 ‘헤벨’에 속한 것들인 것입니다. 따라서 전도자가 헛되다고 고백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영원하신 하나님, 그러니까 히브리어로 “올람”이신 하나님과 비교하여 인간의 존재 자체가 영원하지 못한, 그러니까 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리는 히브리어로 “헤벨”인 존재이기에 헛되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 말씀에서 전도자가 헛되다고 고백하는 이유가 있는데요. 그 이유는 바로 ‘해 아래 새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9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전1: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방금 읽어드린 말씀과 같이 ‘해 아래 새 것이 없죠’ 왜 그렇습니까? 9절 말씀을 보시면,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니라’ 말씀하고 있는데요. 여러분들도 다 경험해보셨겠지만, 인간의 인생이라는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는 일들이 구체적으로 보면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크게는 거의가 다 똑같죠. 태어나서 결국에는 늙어 병들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해 아래 새 것이 없고, 유한한 인간들의 인생은 모두가 다 반복적인 인생들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 나오는 전도자가 전1:2 말씀과 같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고백했던 진짜 이유가 있는데요. 전1:12-13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전1:12-13]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전도자는 이스라엘 왕이 되어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다 살펴보았던 것이죠.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떻다는 것입니까?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다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자는 14절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1: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람을 잡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죠. 그렇기 때문에 바람을 잡으려는 것 자체가 헛된 일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이 다 헛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인간이 이 땅에서 이루려 하는 모든 일들은 다 헛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도서는 왜 기록되었을까요? 인간들이 하는 것이 다 헛되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허무주의를 주장하기 위해 쓰였을까요? 그렇지 않죠.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기록되었겠습니까? 히브리어로 헤벨과 같이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존재인 유한한 인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어로 올람이신 하나님, 태초부터 지금까지 변함 없이 영원하신 하나님 그 분을 강조하기 위해 전도서가 쓰여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직 우리 하나님만이 영원하시고, 태초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으시고, 앞으로도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 우리는 성도로서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경외하며,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하루도 태초부터 지금까지 변함 없이 영원하신, 올람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경외하며,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사시는 그와 같은 여러분들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