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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65-72 고난이 축복임을 깨닫는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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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 이 시간 알파교회 주일예배 가운데 참여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평강이 가득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울러 온라인으로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들 모두에게도 우리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가득하시길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사자성어 중에 “금상첨화”라는 사자성어가 있으시죠. 금상첨화의 뜻은 “비단(緋緞) 위에 꽃을 더한다는 뜻”으로, “좋은 일에 또 좋은 일이 더하여짐”을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날 동안 이처럼 좋은 일만 계속해서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삶의 현실은 그와 반대로 “설상가상”일 때가 더욱 많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지만, 설상가상의 의미는 “눈 위에 또 서리가 내린다”는 의미이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은 좋은 일들은 참 띄엄띄엄 생기는 것 같은데, 좋지 못한 일은 그 일들이 항상 연속해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하나만 생겨도 마음이 너무 괴롭고 힘든데, 한꺼번에 연속해서 몰려오니 더욱 마음이 괴롭고 힘든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벌써 11년 전이네요. 아내가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였습니다. 눈이 아주 많이 오던 날이었습니다. 임신한 아내가 떡볶이를 너무 먹고 싶다고 하니 무조건 사와야죠. 그래서 집 근처 분식점에 갔는데, 주차공간이 없어서 길가에 주차를 하고, 뛰어서 분식집에 들어갔습니다. 길가에 주차했기 때문에 제가 주차한 차가 다른 차량의 통행에 방해가 될까 싶어서 떡볶이 2인분을 들고 제 차를 향해 뛰어갔습니다. 그런데 눈 밭을 발로 밟는 그 순간 저는 눈에 미끄러져 완전히 앞으로 철퍼덕 넘어져 버렸고, 손에 들고 있던 떡볶이 봉투는 눈바닥에 완전히 때기장 쳐버린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다 경험해보셨겠지만, 이런 상황이 너무 부끄럽잖아요. 그래서 벌떡 일어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차에 탔습니다. 옆 좌석에 떡볶이 봉투를 놓고 잠시 가만히 앉아 있는데, 손이 너무 시렵고, 또 넘어진 곳이 너무 아픈 것입니다. 분명 저의 부주의로 인해 생긴 일인데, 불쾌한 감정이 너무 북받쳐 오르는 것이죠. 그래도 어쩌겠습니다. 불쾌한 감정을 억누르고 차를 몰고 집 앞에 주차하고, 이제 떡볶이 봉투를 들고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큰일이 났습니다. 넘어지면서 때기장을 쳤던 떡볶이 봉투에 구멍이 났던 것입니다. 차 앞좌석 시트 전체가 떡볶이 국물로 범벅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설상가상이죠. 진짜 밖에 눈도 내리고 있고, 이러한 상황이 진짜 설상가상인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전 말씀드린 저의 경험은 고난까지는 아니죠. 그냥 좋지 않은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난 해프닝에 불과한 것입니다.

부주의로 인해 생기는 고난

그런데 우리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좋지 못한 일들의 경우, 어느 정도는 우리들 스스로의 부주의로 인해 생기는 경우가 많죠. 앞서 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제가 눈길에 넘어진 것은 저의 부주의 때문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제가 만약 조심했었다면 절대로 넘어지지 않았겠죠. 그런데 우리가 겪게 되는 질병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요. 아무리 건강 관리를 잘해도 걸릴 수 있는 것이 질병이지만, 우리들이 보통 질병에 걸리는 경우는 우리 스스로가 건강 관리를 잘하지 못해서 걸릴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콜레스테롤이 둠뿍 담긴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음식을 너무 좋아해, 하루도 빠짐없이 그러한 음식을 드시는 분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분은 항상 식사 시간에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음식 먹고, 몸 건강하게 해 주시고, 지켜주세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분이 성인병에 걸릴까요? 안걸릴까요? 물론 안걸릴 수도 있겠지만, 걸릴 가능성이 더욱 크겠죠.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항상 허리 꾸부정하게 다니고, 의자에 앉을 때에도 좋지 않은 자세로 앉는데, 하나님 잘 믿는다고 허리 디스크가 안생길까요? 그렇지 않죠. 따라서 우리는 삶을 살아갈 때, 올바르게 건강 관리도 잘하고, 바른 자세로 잘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특별히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몸을 잘 관리하고, 더욱 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 스스로의 부주의로 인해 생기게 된 좋지 못한 일들도 있지만, 본인의 부주의와는 전혀 상관없이 생기는 고난들도 참 많이 있습니다.
예전 사역하던 교회 집사님의 사연인데요. 그 집사님 부부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의 부주의와는 전혀 상관없이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셨다고 합니다. 그 후 그 집사님 부부는 심각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국가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형편이 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 그 집사님 부부에게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이 있었는데요. 그 사건 얼마 후 딸이 갑자기 열경기를 하며 아팠다고 합니다. 그들 스스로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황에서 딸의 병 간호를 하기가 너무 힘들어 그 당시 딸이 아팠던 상황을 잘 대처하지 못하셨는데, 그 일로 인해 딸은 청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20여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심방을 통해 제가 이 집사님 부부를 만나게 된 것이죠. 20여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집사님 가정의 상황은 그 당시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고, 계속해서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오셨다고 합니다.
또 이런 분도 있었습니다. 이 분은 홀로 살고 계시는, 여든 정도 되시는 독거노인이셨는데요. 제가 “집사님 어떻게 혼자 살게 되셨어요?”라고 질문하자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11살 때 불치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 후 남편도 세상을 떠나서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거의 50여년을 혼자 살아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를 잃은 그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그래서 정신적인 어려움까지도 겪으셨다고 말씀하셨고,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가끔씩 그 아이가 생각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지금 현재 그 어르신은 녹내장으로 시력을 점점 잃어가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은 삶의 고난들을 만나게 될 때 그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극복해 내야 할까요? 여러분들은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문제들을 만날 때, 그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시고, 어떻게 극복해 내고 계십니까?

고난이 유익인 이유

성경 말씀을 보면 고난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119편도 그 중에 해당됩니다. 시119편 말씀을 기록한 시편 기자는 고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는데요. 71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시119:71a]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방금 전 제가 읽어드린 말씀에서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말씀하고 있는데요. 고난이 어떻게 유익일 수 있겠습니까?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고난을 유익이라고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죠. 앞서 제가 말씀드렸던 성도님들께 제가 심방 설교 말씀으로 “집사님 고난 당한 것이 유익이예요. 하나님께서 고난을 축복으로 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없죠. 절대로 고난을 유익이라고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의 시편 기자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유익”이라고 번역된 단어의 본래 의미부터 알아야 하는데, “유익”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로 “토브”라는 단어입니다. 그 의미는 “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의미를 담아서 71절 말씀을 다시 말씀드리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선하다”는 의미인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 말씀을 보면, 선과 악이 나오죠. 그러면 이것을 나누는 기준이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이 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면, 선한 것이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이면, 악한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씀하셨는데요. 보시기에 좋았더라 할 때, “좋았다”는 의미가 바로 “토브”입니다. 즉, 선이라는 의미인 것이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선하다”는 의미는 우리가 고난 당한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다는 의미인 것인데, 쉽게 말씀드리면, 우리가 고난을 당한 그 의미 안에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가 담겨 있다는 뜻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선하신 분이신 줄 아십니까? 100%, 완전하게 선하신 분이세요. 그러므로, 어떠한 일을 행하실 때, 악의적인 의도를 절대로 가지실 수 없으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와는 반대로 사탄은 100% 악한 존재죠. 100% 악의적인 의도만 있고, 선함은 절대로 함께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말씀에서 언급하고 있는 고난이란, 우리의 부주의와 불순종으로 인해 겪는 고난이 아니라, 또는 사탄의 유혹으로 인하여 겪는 고난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100% 선하신 의도 속에서 이루어지는 고난만이 우리에게 유익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세요.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의 기자는 65절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119:65]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 주의 종을 선하게 대하셨다는 의미인 것이죠. 그런데 이 말씀에 나오는 “선대하셨다”는 표현도 히브리어로 “토브”라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100% 완전하게 선하신 분께서, 100% 완전하게 선한 의도로, 100% 완전하게 선한 것을 우리에게 베푸셨다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100% 완전하게 선한 것 안에는 고난까지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주시는 이유

사랑하는 알파교회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실까요? 결과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인데요. 오늘 시편 말씀에 의하면,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하나님 앞에서 그릇 행하였다고 합니다. 67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시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그릇 행하다”의 히브리어 단어의 본래 의미를 알면, 그릇 행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샤가그’라는 단어인데요. 이 단어의 본래 의미는 “정도를 벗어나다”입니다. ‘정도’ 그러니까 하나님의 도를 벗어났다는 의미인 것이죠. 따라서,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계획과 상관 없이 나의 길, 나의 계획, 나의 방법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그릇 행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언제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까? 고난 당하기 전에는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난을 당하고 난 이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67절 후반부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시119:67]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그러니까 고난을 당하고 난 이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죠. 나의 길, 나의 계획, 나의 방법으로 나아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시 71절 말씀을 보시면,
[시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배우게 되었다”로 번역된 단어의 히브리어 원형은 “라마드”라는 단어인데요. “뽀족한 막대기로 찌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잘못한 자에게 매를 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잠13:24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데요.
[잠13:24]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들이 그릇행할 때 우리를 위하여 매를 드시는데, 그것이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를 담아서 71절 말씀의 후반부 말씀을 풀어서 말씀드리면,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는 것에서, “내가 주의 율례에 관하여 가르침을 받았나이다”로 번역할 수 있겠죠. 어떻게 가르침을 받았습니까? 고난이라는 사랑의 회초리로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개인적 간증

사랑하는 알파교회 성도 여러분,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가르침을 저희 가정도 피할 수 없었는데요.
2018년 여름이었습니다. 저희 둘째 딸이 팔과 다리가 아프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저희는 그냥 성장통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보니 소아류마티스 관절염이라는 것입니다. 이 병은 아이들에게는 희귀병이며, 이 염증으로 뼈의 성장을 방해해 뼈가 장애를 입을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별도의 약이 존재하지 않고, 아플 때마다 소염진통제를 먹는 수 밖에 없어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시길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죠.
그러던 차에 그 해 9월, 밀양에 살고 계시던 어머니가 등이 아프셔서 진찰을 해보니 폐암4기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늘 건강하시던 어머니께서 암이라는 사실이 저에게는 너무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삶을 사셨던 어머니의 마지막이 이와 같을 것이라고 전혀 상상을 못했기에 그 충격이 더욱 컸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일로 인해 2달 정도 불면증에 시달리며,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2019년 1월이었습니다. 이제는 어머니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즈음, 막내 아들까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18년도부터 두 달에 한 번 정도 갑자기 쓰러지는 허혈증상이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으로 잦아져서, 뇌의 정밀진단을 받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순천향병원에서 뇌MRI와 뇌MRA, 뇌파검사 등 정밀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검사 결과 모야모야병(소아뇌졸중) 같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고, 뇌파도 정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재검사를 했는데, 모야모야병은 아닌 것 같고, 뇌파가 정상이 아닌데, 뇌전증(간질)인 것 같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이의 희귀병 진단 때에는 마음이 많이 불안했고, 그 이후 어머니의 폐암 4기 진단으로 큰 충격을 받았었지만, 막내 아들까지 아프기 시작하면서, 저희 가정은 이 일들로 인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세지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불안함, 두려움보다는 이 고난을 통해 성도님들의 고난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면서, 이 고난이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 주신 축복이라는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아들의 병을 놓고 제 아내는 이 아이가 어떤 병이든지 살려만 주시면 하나님의 아들을 잘 키워내겠다고 매일 기도하고 있었는데, "너희 아들은 왜 내가 데려가면 안되는데? 내 아들인데 왜 내가 데려가면 안되는데!"하는 마음 주셨다고 합니다. 그 때 제 아내는 하나님의 간증이 되게 하시려고 만약 아이를 데려가신다면 제 아들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하나님 원대로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많은 성도님들이 저희 가정을 위해 함께 기도 해주셨는데, 그 이후부터는 막내가 쓰러지는 일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 때부터 저희 가정은 더욱 확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의 믿음을, 저희의 순종을 보시기 위해 이러한 일을 계획하신 것이구나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해 2019년 여름 휴가 중 큰 딸이 17일 동안이나 고열이 떨어지지 않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정확한 병명이 나오지 않아 많은 검사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검사하는 과정에서 저희 큰 딸이 갑상선항진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인들에게는 자주 있는 병이지만 아이들이 걸리면 어른보다는 위험한 병이며 심장병, 성장 방해 등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았던 병이었습니다. 만약 고열이 나지 않았다면 갑상선 항진증이라는 병명을 알지 못했을 것인데, 고열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것이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갑상선항진증은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셔서, 병원에서는 3년 이상 걸린다고 하였는데, 6개월만에 완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19년 10월말 저희 둘째 딸이 큰 딸과 같이 고열이 계속 떨어지지 않아 입원하여 검사를 받게 되었는데, 검사 과정 속에서 알게 된 사실은 둘째 딸이 C형 간염을 앓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주 일어나지 않는 병이라 병원에서도 3번이나 검사를 했고 3번다 수치가 좋지않은 C형 간염이었습니다. 그래서 C형 간염에 대해서 알아보니 이 질병은 우리 몸에서 자연적으로 치료되는 경우가 1% 미만의 확률을 가지고 있고, 거의 대부분 만성으로 진행되어, 간경화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아주 심각한 질병인데 간염 시작 나이가 너무 어려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하였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의 경우 C형 간염에 대한 예후가 별로 없기 때문에 의사 선생님도 가슴이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그나마 치료 효과가 좋은 유전자가 있으니 그 유전자가 나오길 검사결과를 기다려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때에도 저희 가정은 감사함으로 서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이 축복이라고 고백하게 해주셔서 감사했고, 아픈 우리 아이들의 부모이게 해주셔서 감사했고, 어떤 결과이든지 감사함으로 받을 준비를 시켜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유전자 검사 결과를 듣지 못한 채 성도님들을 모시고 1년 전부터 준비하였던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성지기간 중 매일 밤마다 그나마 치료 효과가 좋은 유전자형이길 간절히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성지순례 모든 일정을 다 끝내고 결과를 듣는 시간은 제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 있을 시간이었는데, 비행기가 착륙한 후, 아내가 남긴 문자를 보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검사결과 기적적으로 C형 간염 항체가 생겨, 정상수치로 돌아왔다고, 의사선생님도 기적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해 2020년 1월 둘째 딸의 C형 간염은 기적처럼 자연치유 완치 판정을 받게 되었고, 류마티스관절염은 아직 부작용없이 잘 성장하고 있으며, 갑상선항진증을 앓고 있던 큰 딸은 6개월만에 갑상선 수치가 정상으로 완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년 5월 막내 아들이 한달 정도 계속 코피를 흘리고, 머리를 많이 아파해 다시 뇌MRI와 뇌MRA, 그리고 뇌파 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모야모야를 의심케 했던 좁은 혈관이 튼튼하게 잘 자랐고, 정상적이지 않았던, 뇌파도 정상뇌파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로써 세 아이 모두 깨끗하게 완전 치유를 받게 된 것입니다.
저희 가정은 정말 오늘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고난 당한 것이 저희에게 유익이었습니다. 먼저는 힘든 고난이었지만 감사함으로 받으니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는 축복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고난을 통해 지금까지는 성도님들의 아픔을 머리로만 이해했었는데, 이제는 마음으로 성도님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하시고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교만했던 저희들을 겸손케 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70절 말씀에서, [시119:70a]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각주를 보시면, “마음이 둔하여 기름에 잠김 같으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동안 저희의 마음이 이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이 둔하여 졌고, 기름에 잠김 같이 되어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고난을 당하니까,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지 않으려고 해도 맞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난 당한 것이 유익이었던 것은 아이들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자신의 병을 고쳐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이 아이들이 경험하게 된 것이죠. 욥이 욥42:5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욥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아이들이 그 동안에는 하나님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는 신앙 생활을 하고 있었죠. 부모를 통해 간접적으로 신앙 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질병이라는 고난을 겪고 난 이후 이제는 눈으로 직접 주님을 뵈옵는 영적 경험을 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알파교회 성도 여러분, 고난이 없이는 이처럼 하나님을 겸손하게 경험할 수 없기에 어쩌면 고난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최고의 사랑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십자가 고난을 통해 우리를 향하신 사랑을 몸소 보여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나가는 말

말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에게도 고난이 내게 축복이라고 깨닫고, 또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 은혜가 넘쳐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너무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겪을 당시에는 너무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을 통해 여러분들을 만나시기 원하세요. 욥의 고백과 같이 여러분들의 신앙이 귀로 듣기만 하는 신앙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눈으로 직접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으로 성장하길 원하고 계세요. 그리고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난 너어에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기적의 은혜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 기적의 은혜를 누리며, 고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붙들고 늘 승리하는 삶을 사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