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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24:1-25 하나님이 이 곳에 성전을 세우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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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할렐루야 오늘 이 새벽에 알파교회 새벽기도회에 참여하시고 또한 온라인으로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평강이 가득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삼하 24장 말씀입니다. 다윗의 인구조사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이 사건은 대상 21장에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두 본문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인 것이죠. 오늘 본문 말씀에서 다윗이 인구조사를 함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7만명이나 죽게되는 큰 비극이 발생하게 됩니다. 사실 인구조사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인구조사에 대해서 진노하셨는데요. 다윗의 인구 조사에 대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이유는 백성의 인구 조사 배후에 다윗의 교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구를 조사했다는 것은 흔히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 같은 백성들의 총 숫자를 계수한 것이 아니라, 전쟁에 나갈 수 있는 백성들의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하24:9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삼하24:9] 요압이 백성의 수를 왕께 보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 명이었더라
방금 읽어드린 말씀과 같이 칼을 빼는 담대한 자의 숫자를 요압이 다윗에게 보고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이유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그의 군대를 의지하고 싶어서 그 수를 계수하는 것입니다. 다윗 이전에 하나님보다 자신이 소유한 군대를 더 의지하였던 사람이 있었는데요. 그 사람은 바로 사울이었죠. 그런데 지금 다윗도 동일하게 자신의 군대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모든 전쟁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아갔었는데, 이제는 자신이 소유한 군대의 세력으로 전쟁을 치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자신이 소유한 군대 정도면, 어떠한 전쟁이든지 승리할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이 든 것이죠. 대상 21장에서는 사탄이 다윗을 충동질 했다. 표현하고 있는데요. 다윗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죠. 사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두 번이나 주셨습니다. 먼저 삼하24:3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다윗은 단념시키기 위해 요압을 보내셔서 지혜로운 권고를 듣게 하셨으나 4절 말씀을 보시면, 다윗은 인구 조사를 더욱 재촉하였습니다. 그리고 8절 말씀을 보시면, 인구조사는 아홉달 스무날이 걸렸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거의 10개월이나 걸린 것이죠. 이처럼 오랫동안 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기다려 주신 것이죠. 이것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항상 우리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가지고 있는 큰 장점 한 가지가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죄라는 마음을 주시면, 곧 바로 회개하며 엎드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0절 말씀을 보시면, 다윗은 인구조사를 다 마치고 나서, 스스로 자책하며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죠.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사무엘하 말씀을 묵상해 오면서, 많이 봐왔지만 죄의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었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갓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3가지 심판을 제시하십니다. 13절에 나오는데요. 첫 번째는 칠 년 기근을 말씀하셨고, 두 번째는 다윗이 원수에게 쫓겨 석 달 동안 도망하는 치는 것이구요. 세 번째는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는 것인데, 다윗은 그 가운데 3일 동안의 전염병 심판을 선택하죠. 이에 그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7만명이나 되는 백성들이 죽게 되는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지도자의 죄악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후 갓 선지자는 다윗에게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 그 타작마당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으라고 명하시는데요. 역대상에서는 오르난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그 말씀대로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값을 지불하고 사서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은 이에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에 내리던 재앙이 그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 곳에 성전을 세우신 이유

자,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선지자 갓에게 명하여 다윗에게 아라우나의 그 타작마당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으라고 명하셨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왜 그런가하면, 그곳이 바로 여호와의 성전이 지어질 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상22:1 말씀을 보시면,
다윗이 이르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하였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여, 그의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징계와 심판을 받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하나님께 드린 이 제사를 통해, 깨어졌던 하나님과 다윗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게 된 바로 이 곳에,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왜 중요한가하면, 구약에서의 제사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의미 때문인데요. 구약에서의 제사는 그 제사를 통해 죄악된 인간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격을 얻도록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성막은 무엇일까요? 죄악된 인간이 제사를 통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난 이후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성막인 것이죠. 그리고, 성막은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성막은 예수님의 모형인 것입니다. 따라서, 성막의 의미를 계속해서 이어가야할 성전, 즉 신명기 말씀에서 그토록 강조하고 있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인 성전을 지을 성전터는 그냥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곳을 택할 수 없었던 것이죠. 그러므로 비록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으나, 제사를 통해 다윗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된 이곳, 바로 이곳에 성전이 지어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 소름끼치는 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즉 역대상에서 말씀하고 있는, 오르난의 타작마당은 이미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역대하3:1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죠.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 혹시 모리아산, 많이 들어보시지 않으셨습니까? 모리아산은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곳이죠.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장소, 그곳이 바로 아라우나, 즉 오르난의 타작마당이었던 곳이죠. 그러므로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고, 예전에 이곳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것처럼, 이곳 근처 골고다 언덕에서, 하나님께서 그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신 것입니다. 누구와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기 위해서요? 지금 설교를 듣고 계시는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서요. 이것은 우연이었을까요? 우연이 아니죠. 하나님의 계획이었죠. 따라서, 아브라함은 반드시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바쳤었어야만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이미 그 곳에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 곳에서 그의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실 계획을 이미 가지고 계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반드시 하나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어야만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그곳에서 깨어진 다윗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실 뿐만 아니라, 미래에 그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시면서,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인간들와의 관계를 회복시킬 계획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왜 이럴까하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을 겪을 때가 참 많이 있죠. 그러나 하나님 관점에서 보면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왜 꼭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바쳐야 했을까? 다윗이 왜 꼭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아야 했을까? 솔로몬 성전은 왜 여기에 세워야 했을까? 그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더라도, 다 알려고 하기 보다는 이후에 더 좋은 것을 주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양을 준비하시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나타내어 보이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시면서, 여호와 이레,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의 죄를 용서하고, 그들과의 관계 회복을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고난 가운데에서도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고난 이후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더 좋은 것을 예비해 두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10월 마지막 날입니다. 세상에 너무 좋지 못한 일들과 슬픈 소식들이 가득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도 그러한 일들이 혹시 많이 있으신지 모르겠네요. 오늘 주신 말씀과 같이 여러분들 가정과 삶 가운데 새롭게 시작되는 11월부터는 여호와 이레,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승리하는 삶 사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