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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사랑하는 우리 알파교회 성도 여러분, 2주전부터 우리는 참된 성도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죠. 우리를 어떻게 부르셨습니까?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직분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는 세상 속에서 왕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아직까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지 못한 자들, 그러니까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수 있도록 전도하는, 그와 같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 설교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께 말씀드렸다시피, 우리가 이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먼저 해야할 것이 있었죠?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다른 자들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되도록 하기 이전에 우리들이 먼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계속해서 유지되어 있어야 했던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기 위해 우선은 우리가 하나님 그 분 자체를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자가 되어야 했고요. 그리고 하나님 그 분 앞에 감사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했었죠.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성전의 문을 열었듯이 우리가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향하여 당신의 마음을 활짝 여시고, 우리들도 하나님의 그 임재 속에 깊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더욱 더 화목한 관계가 되는 것이죠.
자 그렇다면 우리가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임재 속에 더욱 깊이 들어가 하나님과 더욱 화목한 관계를 이루게 되었다면,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참된 성도로서의 사명, 즉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사명,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더욱 잘 감당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 마10:26-33까지 말씀의 배경이 되는 사건도 바로 그와 같은 사건인데요. 마10장 1절 말씀, 함께 보시겠습니까? 제가 읽어드리죠.
[마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방금 읽어드린 말씀에 의하면, 주님은 열두 제자를 세우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는데요. 왜 이와 같이 하셨는가하면요. 5절 말씀을 보시죠.
[마10: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방금 읽은 말씀을 보니까 주님은 그 열두 명의 제자들을 내보내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그러니까 주님은 이들을 파송하시기 위해 이와 같은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무엇을 하라구요? 복음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라고요.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잘 감당하라고 이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주님께서 이들을 파송하셨으니까 이들이 앞으로 복음을 전하는 길이 탄탄대로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하죠. 주님이 말씀하셔서 나아가는 길인데, 당연히 탄탄대로여야 하죠. 우리들은 보통 주님이 말씀하셔서 무언가를 순종해서 나아가면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니까 모든 일들과 모든 과정들이 술술 풀릴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탄은 가만이 손 놓고 있습니까? 사탄이 바보인가요? 그렇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그 길을요. 사실은 험한 길이고, 더 과격하게 말씀드리자면, 막힌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탄의 철처한 반대와 훼방에 부딪히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나아가는 그 길은 이리들이 가득한, 그러니까 이리에게 잡아 먹혀버릴지도 모르는 굉장히 위험한 길이라는 것이죠. 그러면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17절 말씀인데요.
[마10:17]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무슨 의미입니까? 복음을 전하다가 대적들에게 잡혀서 고문을 당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22절 말씀을 보시면요.
[마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러니까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복음을 전하는 이 길이 힘들고 외로운 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왜 이와 같은 일들이 생기게 되겠습니까? 사탄은 성도들을 위협하고 그들을 두렵게 하면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성도로서의 사명을 중단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므로 사탄은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사명, 즉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도록 훼방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일들을 저지르는 것이죠. 실제로 사탄의 이와 같은 위협 앞에 수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포기하는 일들이 많이 생겨났었고요. 심지어는 배교의 길을 걸은 자들도 많았던 것이죠. 그렇다면 앞으로 펼쳐질 사탄의 위협과 그 두려운 상황 가운데, 어떻게 이 위기를 잘 극복해 나아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오늘 저는 이 부분에 관해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26절 말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는데요.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 놓여 있는 제자들에게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자들은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들에게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실 때에는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으시기 때문에 그와 같이 말씀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주님께서 이처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첫 번째 이유는요. 26절 말씀에 나오는데요. 26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마10:26]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방금 읽은 말씀에서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고 말씀하고 계신데요. 쉽게 말씀드리면, 이런 의미입니다. 감추인 것과 숨은 것, 이것들이 드러나고, 알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감추인 것과 숨은 것은 무엇입니까? 복음이죠. 그러니까 그동안 감추어져 있었고, 숨은 것이었던, 이 복음이 드러나고, 이 복음이 알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말씀에 의하면 이 복음은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이었는데요. 이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밝히 알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동안 밭에 감추어져 있어서 아무도 알지 못했던 이 보화같은 복음이 세상에 널리 널리 알려져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그들이 아무리 핍박하고 미워하고 두렵게 한다 하더라도, 사탄이 제 아무리 우리를 두렵게하고 훼방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드러나고 알려져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가진 그 두려움으로 인해 복음 전파가 중단됨이 절대로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성도의 사명이며,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이 사명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사탄의 위협이 두렵고 떨릴 수는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절대로 포기하거나 중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두려우면 두려운 데로 묵묵히 그 사명을 붙잡고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았던 대표적인 인물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그 사람은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당시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는데요. 행18:6 말씀을 보시면, 유대인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던 바울을 대적하고 비방했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그 자리를 피하여 디도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으로 가게 되죠. 그 날 밤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나타나 말씀하시는데요. 행18:9-10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행18:9-10]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방금 읽은 말씀에서 확인하신 것처럼, 그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죠.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주님이 이와 같이 말씀하셨겠습니까? 유대인들의 위협으로 인해, 협박으로 인해 사도 바울이 겁을 먹고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이죠. 사도행전 말씀을 읽을 때, 우리들은 보통 사도 바울이 너무 기계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 같아 보이니까 그는 힘든 고난이 와도 별로 힘들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사도 바울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기에 대적들의 위협과 핍박 앞에서 우리들과 똑같이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사도 바울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무슨 말씀입니까? 바울아 네가 지금 현재 힘들고 두려운 상황 가운데 놓여 있는 것을 내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그러니까 복음 전하는 것을 중단하지 말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0절 말씀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 27절 말씀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는데요.
[마10: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말씀하고 있는데요. 무슨 의미냐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당시의 상황은 어두운 데서 귓속말로 한 정도로 그리 많지 않은, 몇 명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한 수준이었다면, 그러나 “너희들은 광명한 데서 집 위에서”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복음을 부끄러움 없이 중단 없이 전파하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두려움 없이 부끄러움 없이 중단 없이 계속해서 전해야 하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만드는 두려움과 그 어떤 이유도, 하나님 앞에서는 핑계 거리 밖에 되지 않죠. 그러므로 우리는 딤후4:2 말씀과 같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을 전하는 삶을 반드시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그들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그들이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가 진짜 두려워 해야할 대상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대한 신앙 인물들의 공통점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들은 하나 같이 세상보다, 세상의 권력보다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했다는 점입니다. 느1:5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느1: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또한 단9:4 말씀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단9: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방금 전 읽어드린 이 두 기도문은 느헤미야와 다니엘의 기도문인데요. 이 두 기도문을 보시면 굉장히 비슷한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기도문 속에서 느헤미야와 다니엘, 이 두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데요. 이들은 하나님을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들은 왜 하나님을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라가 멸망하게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세상 권력과 그 어떤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갔었는데요. 그 이유는 그 어떤 세상의 권력보다도 하나님이 더 두려웠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지만 느헤미야와 다니엘 이 두 사람들도 사도 바울처럼 세상 권력과 그들의 핍박이 왜 안 두려웠겠습니까? 당연히 두려웠겠죠. 하지만, 이들은 세상 권력보다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했기 때문에, 고난을 무릅쓰고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갔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지만 우리가 이처럼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삶을 살아가면요. 사탄이 열받아 우리를 사지로 내몰고, 죽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사탄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풀무불에 던져 지게 만들었고, 다니엘의 경우에는 사자굴에 들어가도록 만들었죠. 이 뿐입니까? 사탄은 예수님까지도 죽음으로 내몰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게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죠.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그 뜨거운 풀무불에서 하나도 타지 않고 건져내어 주셨고, 다니엘도 사자굴에서 살아나오게 하셨으며, 예수님께서는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셔서 진짜 승리가 무엇인지 보여주셨죠.
그러므로 이것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아간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고난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죠.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비록 이 땅에서 실패한 것처럼 보여질지 모르나 절대로 실패가 아니죠.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후 승리를 우리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가져다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10:28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공포의 대상으로 두려워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독보적으로 위대하신 분이시잖아요. 그러므로 그 분 앞에서 경외심을 가지고 두려워하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느헤미야도 다니엘도 하나님을 지칭할 때, 두려우신 하나님이라 말하지 않고,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이것을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표현하죠. 따라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이처럼 두려운 환경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존귀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9절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죠.
[마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방금 읽은 말씀에서 언급하고 있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린다”는 내용은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예입니다. 그런데 다시 29절 말씀을 보시면, 그 뒷부분에 뭐라고 언급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이라 말씀하고 있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그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주 보잘 것 없고, 가치 없다 여겨지는 일까지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이 세상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일어나는데, 하물며, 두려운 환경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30절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다고 까지 말씀하시며, 이들을 사랑으로 관심을 가지며 지켜보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존귀히 여기고 계시는데, 오늘 말씀을 들으시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들도 이 땅에서 성도로서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이처럼 세상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참된 성도로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마10:32-33 말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10:32-33]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방금 읽은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이냐하면,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한다는 의미는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하며, 공개적으로 내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선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러면 주님이 어떻게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라 말씀하고 계신데요. 따라서 그 의미는 저 천국에서 모든 천사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하나님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라고 공인하시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와는 반대로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한다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지도 않을 뿐더러, 공개적으로 나는 예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라 선언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인 것이죠. 그렇게 하면 주님이 어떻게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예수님도 저 천국에서 모든 천사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하나님 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공인하시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세상 속에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은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우리는 축복해 주시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와 같은 삶을 제대로 한번 살아가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사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도무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두렵다면 어떻게 저런 일을 저지를 수 있지? 그런 의문을 갖게 되는 일들이 너무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죠. 그것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서 이와 같은 일들이 너무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알파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들 만큼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십시다. 우리들 만큼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감당하는 자가 되십시다. 그러면 저 천국에서 모든 천사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우리 주님께서 공개적으로 “하나님 알파교회 성도들은 다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공인 받은 축복이 우리 교회와 여러분들의 가정과 삶 가운데 가득 넘쳐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