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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봅시다(신15: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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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할렐루야 오늘 이 시간 알파교회 주일예배 가운데 참여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평강이 가득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울러 온라인으로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들 모두에게도 우리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가득하시길 축복합니다.
1970년대 우리 대한민국에 있었던 사회 운동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적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사회 운동이 있었죠. 그 운동은 바로 새마을 운동입니다. 6.25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었고,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까 새마을 운동을 시작할 당시인 1970년도 우리나라의 GDP는 253달러에 불과했었더군요. 그런데, 작년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GDP는 35000달러였다고 합니다. 어마 어마한 경제 성장을 이룬 것이죠. 세계 여러 나라들은 이러한 경제 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 불렀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성장하는데, 새마을 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죠. 새마을 운동하면 떠오르는 몇몇 노래가 있습니다.
새벽 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여러분들 생각나시죠? 이런 노래가 있었구요 또 새마을운동 하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죠.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여러분들 기억나실 것입니다. 왜 이런 노래를 함께 불렀겠습니까? 잘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경제적으로 잘 살지 못했기 때문에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부른 것이며, 또한 이 운동에 모든 국민들을 동참시키기 위해 부른 것이죠. 그런데, 지금 현재 우리는 그 당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잘 살게 되었습니다. 수치적으로는 앞서 제가 언급해드렸던 것처럼, 그 당시 우리나라의 GDP가 253달러였고, 작년 GDP가 35000달러니까 최소 100배 이상 경제가 성장한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는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지금 현재 우리나라가 진짜 잘 사는 나라가 된 것 같으십니까? 경제적인 부분에만 국한하면, 과거보다는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이 맞긴 하지만, 사회 여러 분야에서 보자면, 아직까지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산다’에서의 ‘잘’의 의미가 경제적인 영역을 뛰어 넘어서, 나라의 전 분야에서 보다 보람 있고, 의미 있는, 그러니까 질적으로 잘 사는 그러한 세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말씀을 들으시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들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잘 사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인으로써 잘 산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지 저는 오늘 이와 관련하여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순종해야 하는 이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태초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인간들이 에덴동산에서 잘 살아가길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죄악이 이 땅에 들어오게 되고, 결국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버리고 말게 되었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잘 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자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었기 때문에, 잘 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들이 이 땅에서 잘 살기 위해 회복되어야 할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였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궁극적으로 잘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었을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잣대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보게 되면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나의 인생에 주권자로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을 뜻하죠.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내가 나의 인생에 주권자라는 의미인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자들은 잘 살 수 없는 것이죠. 이러한 자들을 가리켜 시편1편에서는 악인이라 칭하며,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자들은 궁극적으로 잘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계시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순종할 때 약속하신 복

오늘 본문 말씀으로 돌아와서, 오늘 본문 4절 말씀은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신15:4]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방금 읽은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방금 읽은 이 말씀을 두 글자로 줄이면 무엇이겠습니까? “순종”이죠. 따라서, 순종하면 어떻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까? 4절 후반부입니다.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어떻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까? 잘 살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앞서 언급해드렸었죠. 인간이 궁극적으로 잘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는 것이었죠.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을 알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방금 읽은 오늘 본문 4절 말씀을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시네요. 그러니까 잘 살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4절 제일 후반부 말씀을 보시면, 특별히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주 이상적인 말씀이죠. 그런데 현실은 어떠할까요? 11절 말씀입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신15: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현실은 어떠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죠. 그러니까 잘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현실이죠.

가난한 자들이 그치지 않는 이유

왜 그럴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신명기 말씀은 광야 40년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신명기 이전, 민수기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간 생활했었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광야는 어떠한 장소입니까? 아주 역설적인 장소죠. 왜 그런가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야를 고난의 장소로 생각하지만, 사실 광야는 하나님의 돌보심과 은혜가 임하는 곳입니다. 신1:31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신1: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방금 읽은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인도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품에 안으시고 인도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시죠. 엄마가 자기 아이를 안은 것처럼 인도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가 성인이 되고, 독립하게 되면, 밥을 알아서 챙겨먹죠. 그런데, 성인이 되기전, 그러니까 독립하기 전에는 부모가 특별히 엄마가 자녀들의 삼시세끼를 다 챙겨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광야 생활을 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엄마와 같은 역할을 감당해 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매일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의 끼니를 챙겨 주셨기 때문인 것이죠.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골고루 공급하시던 장소가 바로 광야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광야는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는 장소였던 것이죠. 매일 일용할 양식이 주어지기 때문에 특별히 부자도 가난한 자도 없었던 시기가 바로 광야에서의 시기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늘 동행하며,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던 장소였기 때문에, 영적으로 보자면, 가장 잘 살았던 시기가 바로 광야에서의 시기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곧 들어갈 가나안 땅에서의 삶은 달랐습니다. 일단 이제는 더 이상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리지 않습니다. 수5:12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수5:12]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그렇기 때문에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들의 끼니를 챙기시지 않으시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각 지파별로 분배를 받은 기업이 달랐습니다. 그 말인 즉슨, 그들이 분배 받은 땅의 환경과 형편이 다 달랐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보니까, 요단강 동편에 세 지파가 분배 받았는데, 그곳은 지금 현재 요르단 지역이거든요. 그 곳 지역은 지금 현재도 척박한 광야지역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남부에 브엘세바라는 지역이 있는데, 그 곳 근처도, 척박한 광야지역입니다. 반면, 북쪽 지역은 평야지역도 있고, 풍요로운 지역이 많습니다. 특별히 단 지파가 나중에 점령한 지역인 갈릴리 북쪽 지역은 지금 현재도 물이 콸콸콸 쏟아지는 지역으로, 나무도 많고, 숲이 아주 우거진 지역입니다. 그러다보니, 지파별로 빈부의 격차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죠. 풍요로운 지파가 있다면, 풍요롭지 못한 지파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각 지파 안에서 각 개인들도 다 다르지 않습니까? 성실한 사람들도 있는 반면, 게으른 사람들도 존재하죠. 욕심과 탐욕이 많은 사람들도 있고, 각각 그들이 가진 힘과 능력들도 다 다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개성이 다 다르기 때문에 복잡한 변수들이 존재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지파별로, 또한 그 지파 안에서 개인별로 부유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반면, 가난한 자들도 불가피하게 생겨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와 같이 가난한 이들이 생겨날 줄 이미 다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어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도 사랑하셨고, 그들 또한 구원받아야 할 대상자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한 가지 장치를 마련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복을 받고 은혜를 경험한 자들이 그렇지 못한 가난한 자들을 돌볼 수 있도록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말씀이 신명기 말씀에 집중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전 출애굽기와 레위기에는 이와 같은 말씀이 별로 언급되어 있지 않은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이와 같이 빈부격차가 생기게 될 것을 미리 아시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말씀을 미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말씀은 그와 같은 말씀들 중 한 가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돌보아야 하는 이유

앞서 오늘 본문 말씀 4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제가 다시 4-6절까지 말씀을 천천히 읽어드리겠습니다.
[신15:4-6]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방금 읽은 말씀을 요약하면 이러한 내용입니다. “순종하면 복을 주시겠다”는 내용인데요. 아주 대단한 복을 약속하게 계시죠.
1.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2.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3.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니까 경제적인 부유함 뿐만 아니라 다스리는 권세까지도 허락하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명령에 순종을 해야하는지 그 명령의 내용은 7-11절까지 나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한 절씩 교독하겠습니다.
[신15:7-11]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8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9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10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방금 읽은 말씀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죠. 가난한 자들을 돌보면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방금 읽은 이와 같은 말씀이 구약에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약에서도 예수님께서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말씀이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말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 말씀들은 마태, 마가, 누가 공관복음에 다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 만큼 중요한 말씀이라는 것이죠. 재물이 많은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와 질문합니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질문하죠.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계명들을 다 지키라. 그러자 청년이 대답합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지켰는데,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면 어떻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즉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에서 약속하고 계신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말씀을 들으시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들은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들보다 더 심각하게 가난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입니다. 사실 이들은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들보다 더욱 총체적으로 문제인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인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앞서 언급해드렸듯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기에 진짜로 잘 살지 못하고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삶을 반드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으로 부요한 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경험한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이루어져 있고, 그로 인해 잘 살게 되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그와는 반대로,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 잘 살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해야 하는데, 이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경험할 수가 없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밖에 없는데, 영적으로 부요한 자들,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자들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잘 사는 삶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구약 뿐만 아니라 신약 공관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던 부분인 것이죠. 그리고 우리가 돌보아야 할 가난한 자들은 경제적인 가난한 자, 그러니까 육적인 가난한 자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도 다 포함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방금 제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오늘 본문 10절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이유가 나옵니다. 우리 함께 읽어볼까요?
[신15:10]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방금 읽은 말씀 중반부를 보시면, ‘이로 말미암아’로 번역된 단어가 나오는데, 원어 성경에 나오는 이 단어의 의미를 보게 되면, ‘이로 말미암아’로 번역된 것이 약간 어색하게 번역된 감이 없지 않아 있어 보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갈랄’이라는 단어인데, ‘~때문에’, ‘~을 위하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위와 같은 의미를 담아서 10절 말씀을 다시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 때문에, 이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방금 전 읽은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까? 이 때문에요. 이를 위해서요.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구요. 영적으로 육적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이 일 때문에, 이 일을 위하여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잘 살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야 말로 진짜 잘 사는 것입니다. 돈이 많아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진짜 잘 사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 진짜 잘 사는 삶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 사명 더 잘 감당하라고, 이 일을 위하여, 이 일 때문에, 우리에게 복과 은혜를 더 해주시는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면 더 잘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변에 영적으로, 육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 명령하고 계십니다. 제가 생각할 때 가장 불쌍한 자들은 경제적으로 너무 가난한데, 영적으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노숙인 같은 분들이 이에 해당하겠죠. 이보다 더 불쌍한 자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알파교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나누고 베풀며, 특별히 영적으로 육적으로 가난하신 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그러한 사역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님들도 이 일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주시고, 또한 함께 동참해 주셔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나누고 베풀며, 함께 잘 살아가는 알파교회 모든 성도님들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