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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할렐루야 오늘 이 새벽에 알파교회 새벽기도회에 참여하시고 또한 온라인으로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평강이 가득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전도서 2장의 말씀입니다. 전도서 1장 13절 말씀을 통해 이미 언급해 드렸던 것과 같이 전도자는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을 연구하며 살폈습니다.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 중 자신의 인생에 의미가 있고 헛되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는지 연구하며 살핀 것입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2장 말씀을 보시면 전도자가 그동안 구체적으로 어떠한 연구와 노력을 기울였는지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전도자는 즐거움을 추구해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즐거움, 즉 쾌락을 추구해본 것입니다. 전도서 2:1 말씀을 보시면, 전도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즉 전도자는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삶을 살아보았던 것입니다. 또한 3절 말씀을 보시면, 전도자는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전도자는 술로 인한 쾌락을 추구해보았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4-8절까지의 말씀을 보시면 전도자는 자신의 마음을 즐겁게 하려는 목적으로 사업도 크게 확장시켜 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 말씀을 보시면 그는 구체적으로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었고, 5절 말씀을 보시면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6절 말씀을 보시면 연못들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7절 말씀을 보시면 그는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더 많이 가졌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절 말씀을 보시면,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와 같이 사업을 확장하다보니 전도자는 자신의 규모가 점점 커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9절 말씀을 보시면,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지혜 또한 여전하다고” 말씀하고 있죠.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떻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1절 말씀입니다. 자신의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자신이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 같으며 그 모든 것들이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도자는 두 번째로 지혜를 연구하며 추구해 보게 되죠. 13절 말씀을 보시면, 그 이유가 나오는데, 전도자는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아 보였기 때문에 지혜를 연구해 본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15절 말씀입니다.
[전2:15] 내가 내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우매자가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게 지혜가 있었다 한들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전도자가 생각할 때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난 것 같아 보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지혜와 우매가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이죠. 더 나아가 16절 말씀을 보시면 전도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지혜자도 우매자와 함께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후일에는 지혜자나 우매자도 모두 다 잊혀져 버릴 것이고, 심지어는 지혜자의 죽음과 우매자의 죽음이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혜도 다 헛되다는 것이죠.
또한 세 번째로 전도자가 한 가지 더 연구하며 살펴본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열심히 수고함입니다. 열심히 수고하고 노력하는 삶을 살면 헛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20절 말씀을 보시면, 전도자는 자신이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실망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21절 말씀에 그 이유가 나오는데, 그가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수고의 결과는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몫이 넘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도자는 더 나아가 23절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의 결과가 슬픔뿐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에서 보신 것처럼 전도자는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습니다. 인생에서 헛되지 않은 것을 찾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모든 것이 헛되었고,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전도자는 왜 이와 같이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밖에 없었겠습니까? 이유가 있죠. 그 이유는 바로 인생의 목적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다 헛된 결과를 가져오게 한 것입니다. 4절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을 짓고” 방금 전 말씀드린 것과 같이 전도자의 사업은 누구의 사업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사업이 아니라 나의 사업이었죠. 뿐만 아니라 전도자는 집을 지었는데, 누구를 위하여 집을 지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내가 나를 위하여 집을 지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6절 말씀에서도 “나를 위하여”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7절 말씀에서도 “나를 위하여” 8절 말씀에서도 “나를 위하여” 그러니까 전도자는 인생의 모든 목적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죠. 즉 자기 자신을 위하여 모든 일들을 행하였기 때문에 그 결과 허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보통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즐겁고 행복한 일들을 찾아 그와 같은 일들을 추구하며 살면 헛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죠. 전도자가 추구하였던 것처럼, 사업을 크게 하여 많은 것을 벌고 소유면 허무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더 많이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많이 가진들 허무함은 사라지지 않고,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다 헛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술이나 처첩들을 많이 두는 것 언급할 가치 조차 없는 것이죠. 왜 그렇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을 인생의 목적으로 두지 않으면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마음 가운데 만족이 없도록 허무함과 헛된 마음이 들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인생의 목적으로 두지 않고서는 무조건 허무하고 헛되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43:21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위하여 지으셨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그들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이 헛되지 않도록 기쁨과 만족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 24절 말씀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전2: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무슨 의미냐하면, 이런 의미입니다. 사람에게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즉 자기가 하는 수고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것,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이죠. 그런데, 알고 보니까, 이것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인생의 목적을 삼고 살아가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먹는 것과 마시는 것, 그리고 그들이 하는 모든 수고가 허무하고 헛되지 않고, 보람있고, 궁극적인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시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5절 말씀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데요.
[전2:25] 아,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
이와 같이 말씀하고 있는데요. 원어적으로 다시 이 말씀을 해석해 드리면, 그가 없이, 그러니까 하나님 없이 누가 먹을 수 있으며, 누가 즐길 수 있으랴 이와 같은 의미인 것이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먹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것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을 때에만, 궁극적인 만족과 행복 그러니까 이 땅 가운데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주님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간 곰곰히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현재 여러분들이 소망하며 기도하고 있는 것들이 진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한 목적으로 기도하고 계신 것인지 아니면, 여러분들의 정욕으로 구하고 계신 것인지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그것이 이루어진다 하시더라도, 그 당시에는 기쁘실 수 있지만, 그 기쁨은 금방 사라지도, 곧 허무하고 이 모든 것들이 다 헛되다고 생각되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위한 목적으로 기도하시고 그것이 이루어지시면, 진짜 여러분 마음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뭐라 이루 말할 수 없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하염없이 흘러 넘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와 같은 것들을 꼭 경험하여, 이와 같은 일들로 인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경험하게 되시길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여러분들을 더욱 깊이 만나기 원하십니다. 따라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나의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한다는 그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복된 날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