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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4:17-32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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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구원해주신 이유

할렐루야 오늘 이 새벽에 알파교회 새벽기도회에 참여하시고 또한 온라인으로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평강이 가득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또한 오늘부터 추석 명절이 시작하는데, 고향으로 오가는 모든 발걸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은혜가 풍성히 넘치시길 축복합니다. 아울러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 샬롬을 가져오게 하는 축복의 통로로 귀하게 쓰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습니다.
[엡4: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방금 읽은 말씀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과 이방인들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너희”라 표현하면서 이방인들과 구분하고 있는 것이죠. 얼마 전까지 이방인에 불과했던 이들은 이제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백성들이 되었으며, 이제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왜 구원해주셨냐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엡2:10 말씀에 나오는데,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엡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을 구원해 주셨는데, 그들을 구원해 주신 이유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셨고, 또한 그들 가운데 선한 일을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과는 다른 삶을 위해, 즉 선한 일을 행하게 하기 위해 구원해 주셨다는 것이죠. 방금 읽은 엡2:10 말씀 마지막 부분에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표현 중에 “행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헬라어 단어는 사실 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인데요. 그 단어는 “페리파테오”라는 단어인데, 단순한 행동으로써 행하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삶 전반의 태도와 방식 등을 나타내는 유대적 개념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쉽게 설명드리면 “삶을 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단 한번 일회적인 행동이 아니라, 그러한 행동을 반복하며 삶을 살아가는 의미를 가진 단어인 것이죠.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선택하심은, 단 일회, 아니 몇번 우리를 사용하시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교회가 하나되게 하고, 희생의 사랑으로 공동체가 샬롬을 누리게 하는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중요한 것입니다.

이방인의 삶을 살지 말아야 하는 이유

다시 오늘 본문 17절 말씀으로 돌아와서, 후반부를 보시면,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말씀하고 있는데, 방금 읽은 이 말씀에 언급된 “행함”이라는 단어와 “행하지 말라”에서의 “행함”이라는 단어, 이 두 단어 또한 앞서 말씀드렸던 “페리파테오”라는 단어입니다. 좀 전에 설명을 드렸듯이 이 단어는 “삶을 살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이방인들이 사는 것과 같이, 그러한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이죠. 왜 그럴까요? 그 이유가 18절에 나오는데요.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엡4: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방금 읽은 말씀에서 우리가 이방인과 같은 삶을 살지 말아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생명이 그들 가운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보다 더 충격적인 이유가 어디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떠난 대표적인 인물로 구약에서는 사울 왕을 예로 들 수 있죠.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영이 떠난 이후 사울 왕이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님의 생명이 함께하는 자로써, 이방인들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 말씀 엡4:22-24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엡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방금 읽은 말씀을 요약하자면,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말씀하고 있는데, 이러한 삶을 살아야죠.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이 쉽냐는 것입니다. 쉬웠으면 그 누구가 못했겠습니까? 그 만큼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새 사람을 입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옛 사람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 힌트를 우리는 엡4:21 말씀에서 찾을 수 있는데, 제가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엡4: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우리가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신 삶에 대해서 배웠다면 배운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가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삶을 잘 살아내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하면, 가르침을 받고, 배우기만하고 그냥 거기까지만 하고 끝내버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배시간에 말씀을 듣고, 성경을 공부하고, 배우고 거기까지만 하고 끝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해서, 그리스도인이 살아가야 하는 삶에 대해 안다고 해서, 곧장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과 생각을 가질 수 없습니다. 연습해야 합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실습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테니스 레슨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테니스 레슨을 받은 첫 날부터 경기를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만약 한다면, 공을 제대로 받아낼 수도 없을 뿐더러, 반대편 코트로 공을 넘기는 것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계속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해야 경기에 나갈 수 있는 것이죠. 영적인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곧 바로 변화된 자신의 삶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인 것입니다.

영적인 근육을 단련하라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성도님들을 보면, 마치 헬스장을 처음 등록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헬스장에 처음 나가 운동하면 어떤가요? 하지 않던 운동을 갑자기 하게 되고, 쓰지 않던 근육을 쓰게 되니까 온 몸이 아프고, 아프니까 피곤하고, 피곤하니까 운동을 하기 싫고, 그러다가 1년치 헬스장을 등록하면 할인해 준다고 해서 1년치를 등록했는데, 한달도 채 나가지 않고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죠. 저를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이와 같은 경험을 가지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영적인 삶도 마찬가지죠. 오늘 본문 25절부터 32절까지 우리가 세상 속에서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내용들이 언급되어 있는데, 26절 말씀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분이 멈추지 않는데 어떻합니까?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연습해야 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앞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렸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삶이 그냥 몇번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까지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처음에 운동을 하면 힘들죠. 더 피곤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연습하면 우리의 몸에 생기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근육이죠. 이 근육이 우리를 쉽게 지치지 않게 만들며, 체력을 길려주는 것과 같이 영적인 근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성품과 삶에 대해 배우고, 그 삶을 따라가는 삶, 연습하고 훈련하다보면, 반드시 영적인 근육이 생기게 되는데, 그러할 때,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삶을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하나되게 하고, 희생의 사랑으로 공동체가 샬롬을 누릴 수 있도록 쓰임 받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새 사람을 입는 삶을 살아가야하는 이유

마지막으로 우리가 새 사람을 입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지 않을 때, 하나님의 성령이 슬퍼하시고 근심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0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이처럼 우리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고 이방인들과 같은 삶을 살아갈 때, 성령께서는 근심하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30절 후반부에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엡4:30]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무슨 의미냐면,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 희생함으로 너를 구원했는데, 너는 어떻게 이방인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느냐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선한 일을 위해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드리는 것으로만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영적인 근육을 키워 세상 속에서 희생의 사랑으로 샬롬을 가져오게 하는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시는 여러분들 다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